'화웨이' 능가하는 세계 1위 기술에 목숨 건 중견 기업

대형 태극기 20년 건 주성엔지니어링
전체 임직원 중 67%가 연구개발자
적자 낸 해 매출의 73%를 R&D 투자
'몰입'과 '정신의 경쟁력'이 승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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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7 17:57 우리나라에도 중국의 기술 기업인 화웨이(華爲)를 뺨칠 정도로 연구개발(R&D)과 기술 독립에 목숨거는 회사가 있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본사를 둔 주성엔지니어링이다. 1993년 창업한 이 중견기업은 매년 매출액의 15~20%를 R&D에 쓰고 있다(화웨이는 10~15%대). 중국 업체 부도로 돈을 못받아 1100억원의 순손실을 낸 2012년에는 그해 매출의 73%인 653억원을 R&D에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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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건물 외벽에 건물 3층 높이의 대형 태극기가 1년 365일 내내 게양돼 있다. '기술 독립'을 주도하는 '산업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공유하려는 목적에서다./송의달 기자

또 전체 임직원(약 450명) 가운데 약67%가 R&D 인력으로 화웨이(49%)보다 더 많다. 우리 산업계에서 기술개발에 이처럼 전력투구하는 곳은 극히 드물다. 지난달 29일에는 국내 경제5단체 고위임원들을 초청해 경기 용인시 기흥읍에 신축 R&D센터 개관 행사를 가졌다.

반원익 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은 “1200억원을 들여 동종업계 세계 최고 수준의 R&D센터를 지은 주성엔지니어링을 격려하기 위해 경제 5단체 상근부회장들이 모두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현재 18개의 세계 최초 기술과 2162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의 총인원 대비 R&D 인력 비율과 특허 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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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자료 : 주성엔지니어링

대형 태극기 보며 기술독립결의세계 최초 기술 10여개 개발

이달 15일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정문을 들어서자 건물 외벽에 가로 18m, 세로 13m짜리 대형 태극기(太極旗)가 눈에 들어왔다. 대형 태극기는 용인 R&D센터 실내 벽면에도 부착돼 있다. 창업자인 황철주(61) 회장을 만나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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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기술 독립'의 신봉자이다. 그는 "중국의 무서운 추격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라고 말했다./송의달 기자

“2001년 들어 경영이 극도로 힘든 상황에서 마음을 다잡고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임직원들에게 불어넣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사업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미국의 주유소 등에 나부끼는 대형 성조기(星條旗)를 본 적이 있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태극기가 떠올랐다. 20년 내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걸어놓으며 ‘기술독립’을 가슴에 새긴다”고 했다.

회사 보유 특허 가운데 상당수를 직접 개발한 황 회장은 지금도 매일 오전 7시 전에 출근, 7시30분에 기술회의를 주재하고 연구소를 돌며 나사 하나까지 챙긴다.

-기술에 왜 이렇게 매달리는가?
“우리나라는 자원 대국(大國), 시장 대국, 기술 강국과 싸워 이기는 만큼 성장하는 나라이다. 자원과 시장은 갑자기 키울 수 없지만 기술은 노력에 따라 강해질 수 있다.”

1985년 현대전자에 장비 엔지니어로 입사한 그는 이후 7년간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다가 회사를 차려 국내 최초로 반도체 전공정 장비 개발에 성공해 해외에 수출했다. 반도체 D램 제조의 핵심인 캐패서터(capacitor) 전용 화학기상증착기(CVD)와 반도체원자층증착기(ALD) 장비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양산하기도 했다.

27년 전 창업때처럼 지금도 매일 R&D 진두지휘

작년 8월 반도체 소재 등 일본의 수입제한 조치에도 견조한 실적을 낸 주성엔지니어링은 부품·소재·장비 기업 가운데 대표적인 ‘독자 기술 기업’이다.

-그렇더라도 오너가 직접 R&D할 필요가 있는가.
“혁신은 오너(owner)만이 할 수 있다. 개선과 모방은 종업원도 할 수 있지만 ‘리스크’(risk)와 ‘속도’, ‘시간’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오너 한 사람만 가능하다.”
그는 “주말에도 특별한 일 없으면 회사 나온다. 일하는 게 취미이자 특기”라고 했다.

-채용 원칙도 독특하다는데.
“그렇다. 경력은 뽑지 않고 신입사원만 뽑는다. 출신 대학 같은 스펙은 보지 않는다. 우리는 ‘모방’이 아닌 ‘혁신’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스펙 좋은 사람은 리스크 지는 걸 두려워해 혁신에 적합하지 않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젊은이를 ‘혁신 인재’로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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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엔지니어링 건물 복도 바닥에 붙여 있는 '신입사원을 과장 처럼!'이라는 구호/송의달 기자

그는 “매주 한번은 모든 사원들을 회의실에서나 연구개발 현장에서 만난다”며 “결재도 현장에서 내용발표를 들으면서 한다. 사무실에서 하는 결재는 전체의 10%도 안 된다”고 했다

◇주성엔지니어링 경영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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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단위 : 억원
l 자료 : 주성엔지니어링

주성엔지니어링 사내 건물 벽면과 복도 바닥에는 ‘고정관념과 기득권은 출입 금지’ ‘신입사원을 과장 처럼!’ ‘Speed is everything’ 같은 문구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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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엔지니어링 본사 건물 입구에 붙어있는 문구. 혁신을 이루려면 고정관념과 기득권을 깨트려야 한다는 뜻에서다. /송의달 기자

스펙·학벌 아닌 ‘정신의 경쟁력’이 미래 판가름

-왜 이런 문구를 붙여놓고 있는가?
“일이 없으면 1~2개월 출근 안해도 되고 매주 3일이나 6일 근무 등 직원들이 근무 방식을 마음대로 선택한다. 매일 점심시간(12~14시)에는 회사 전원을 아예 끈다. 하지만 일을 할때는 ‘완전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국 ‘화웨이’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런정페이 창업자는 ‘혁신은 낭비다’라고 말한다. 화웨이는 ‘모방’을 통한 연구개발에 주력한다. 우리와 R&D 컨셉트가 다르다. 그러나 ‘모방형 R&D’는 앞으로 한계가 많다. 중국의 맹추격이라는 위기 속에서 우리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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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엔지니어링 경기도 용인 R&D센터 벽에 붙어 있는 구호. 1 더하기 1은 2이지만 창조적 사고과 혁신으로 5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송의달 기자

-한국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관건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빈국(貧國)에서 개발도상국이 되는데는 ‘헝그리 정신’만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풍족한 환경에서 성장한 인재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이제는 ‘지식 경쟁력’이 아닌 ‘정신의 경쟁력’이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얼마나 제대로 된 ‘기업가정신’을 갖추느냐가 핵심이다.”

-앞으로 목표는?
“지금까지 세계1등 기술 개발에 매진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그 기술로 매출을 본격 늘릴 것으로 본다. 향후 2년 내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하고 동종 업계 세계 5위권 안에 진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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