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신파우스트, 당신은 왜 나를 궁금해하지요? / 신영전
신영전 ㅣ 한양대 의대 교수
(그레트헨) 당신은 왜 나를 궁금해하지요? 내가 불안증과 위염이 있고, 어제 약국에서 피부염 연고를 산 것까지 왜 알려고 하지요?/ (메피스토펠레스)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 참, 당신은 유방 성형수술도 받았더군. (음흉하게 웃는다)./ (헨) 이 나쁜 놈!
(헨) 질병 정보처럼 개인적인 것을 당신에게 넘겨주는 것을 정부가 허용할 리가 없어요. 게다가 지금 대통령은 그것에 반대했던 인권변호사 출신이잖아요./ (메) 아직 잘 모르는군. 그는 변했어. 그리고 우리 친구들이 당·정·청을 장악한 지 오래야. 국민 입장을 대변한다는 각종 위원회는 정부 하는 일에 면죄부를 주는 조직으로 전락한 지 오래지. 누가 대통령이 돼도 상관없어. 1개월이면 우리가 장악해. 또 국민들이 싫어했던 ‘영리(법인)병원’이란 이름을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바꿨던 것처럼 이번에도 ‘원격의료’라는 말 대신 ‘비대면 의료’라고 슬쩍 이름을 바꾸면 돼. 벽오지 어르신의 건강을 위하는 척하고, 그것도 안 되면 코로나19 핑계를 대고, 그것이 국가에 부를 안겨줄 ‘미래 먹거리’라고 선전하면 돼. 과학이 보여주는 “달콤한 꿈의 형상을 나풀나풀 보여주면서 망상의 바닷속에 빠뜨리면 되지”. 정보공개 시 처벌하는 법이 있고 공공성을 우선으로 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속아 넘어갈 거야.
(헨) 법이 없어 ‘엔(n)번방’이 생겨났나요? 이렇게 중요한 사안은 국민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나요?/ (메) 국민들이 ‘브래카(BRCA1) 유전자’니 ‘염기서열’이니 하는 말을 알겠어? 게다가 이미 여당은 177석을 차지했고 대통령 지지도도 70%가 넘은 걸 모르나 보군. “힘 있는 자가 곧 정의인 것을.”
(헨) 내 신체 정보를 왜 맘대로 기업이 돈 버는 데 사용하게 하는 거지요?/ (메) 시민사회가 반대했지만 본인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데이터 3법’을 지난 1월 여야가 담합하여 통과시켰지. 참! 당신도 이미 서명했어. 오래전 파우스트가 피 한 방울로 했던 것처럼!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 서류에 흘겨 서명한 문서를 흔들어 보이며 웃는다.)
(헨) 시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저도!/ (메) 입 다무는 것이 좋을걸? 가만있자. 정보를 살펴보니 당신, 결혼 전에 임신을 한 적이 있군. 유방암 유전자도 있네. 약혼자도 아나?/ (헨) 이 치사한 놈. 당신이 ‘엔번방’ 그놈과 뭐가 달라요! 그래도 난 싸움을 중단하지 않을 거예요./ (메) 흐흐흐 잘 모르는군. 우리에게는 유명한 변호사 군단과 ‘바이오 헬스’만이 살길이다 외쳐주는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들이 있지. 까부는 놈이 있으면 그도 치매와 암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과거에 성병을 앓았던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하면 내 말을 잘 들을 거야. 완벽한 자는 없으니 다 우리의 먹이인 셈이지 누구처럼!
(헨) 치매 유전자라는 것은 증명되지도 않았고, 암 유전자 있다고 해도 반드시 암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가짜뉴스 때문에 평생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이들을 생각해 보세요./ (메) 그게 우리가 바라는 거지.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가짜뉴스로 현혹해 그걸 믿게 하면 돼. 그래야 병원도 자주 오고, 건강식품도 많이 사 먹을 거 아니야? (손가락으로 돈 세는 시늉을 한다.)
(헨) 천벌을 받을 거예요./ (메) 핵전쟁, 환경파괴, 코로나19를 불러낸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 인간들이지. “인간들은 그걸 과학이라 부르며, 오로지 짐승들보다 더 짐승처럼 사는 데 이용하고 있지.” 재앙의 원인을 도리어 해결책이라 믿어.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내게 영혼을 팔았는지 알아? “악마는 늙었지만, 이제 과학이란 옷 뒤에 감출 수 있지.” (벌떡 일어나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오! 과학은 위대하도다. 이제 마지막 남은 식민지인 인간의 몸을 점령해야지. ‘벌거벗은 생명’을, 과학으로! 과학이 우리의 지배를 영원하게 해줄 거야.
(헨) 어쩌다 당신은 이렇게 되었지요? 한때는 우리의 동료가 아니었나요?/ (메) 괴물과 싸우다가 달콤한 권력에 중독되었다고나 할까? (조금 슬픈 표정이 잠깐 스쳐 지나간다.)
(헨) (흐느끼며) “선량한 사람들은 비록 어두운 충동에 쫓기더라도 올바른 길을 잃지 않을 거예요!”/ (메) 정말 그럴까? 하하하. (메피스토펠레스의 비웃음 소리와 함께 무대가 어두워진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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