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헬멧 이어 손등보호대까지…전사처럼 무장하는 타자들
by 윤세호[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타석에 중무장 한 선수들이 늘고 있다. 부상방지부터 심리적 안정까지 이유도 다양하다. 투수들은 150㎞ 이상 측정되는 강한 타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지만, 타자는 점점 홈플레이트쪽으로 바짝 들어서는 중이다. 각종 장비의 도움으로 부상 우려에서 조금은 해방된 덕이다. 타고투저 현상의 이면이다.
NC 김준완과 이상호는 메이저리그(ML) 타자들이 널리 사용하는 손등 보호대를 착용한 채 타석에 선다. 좌타자인 김준완은 오른손에, 우타자인 이상호는 왼손에 손등을 보호할 수 있는 배팅 글러브를 착용한다. 타격시 무방비 상태가 되는 손등을 보호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타격하기 위한 목적이다. 최근에는 NC 애런 알테어도 합류했다. 스프링캠프와 자체 청백전까지 순조롭게 타격 페이스를 올렸던 알테어는 개막 후 두 차례나 왼손을 다쳤다. 지난 6일 대구 삼성전에서 외야 수비 중 슬라이딩 캐치를 하다가 왼손등과 손가락을 다쳤다. 지난 13일 창원 KT전에서는 상대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의 공에 왼손등을 맞고 교체됐다. 큰 부상은 피했지만 교류전 기간부터 왼손 부상이 지독하게 반복되고 있다. 그러자 알테어는 지난주부터 손등 보호대를 착용한 채 타석에 섰고 두산과 3연전에서 홈런 포함 14타수 4안타를 기록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상하면 경기에 뛸 수 없고, 경기에 뛰지 못하면 연봉도 삭감된다. 선수 입장에서 부상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다. 때문에 많은 타자들이 매년 시즌을 앞두고 보호 장비 업그레이드에 신경을 기울인다. 메이저리그(ML) 선수들이 사용하는 장비를 눈여겨 보다가 스프링캠프부터 시험한다. 훈련과 실전을 통해 장비에 적응하고 때로는 장비 업체에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수정해줄 것도 요청한다. 매시즌 장비가 업그레이드되는 타자들도 적지 않다.
각종 보호 장비가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심리적 안정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쥐어주는 이점이 있다. 기술의 발전과 선수 요구가 맞물려 장비도 점점 경량화되고 있다. 때문에 보호 장비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타석에 서는 선수가 많다.
LG 베테랑 박용택은 지난 2017년 검투사 헬멧을 착용한 뒤 “왜 이걸 이제야 쓰는지 모르겠다. 정말 좋고 편하다. 타석에서 몸쪽공에 대한 두려움도 크게 줄었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 “예전에는 헬멧이 많이 무거웠다. 검투사 헬멧처럼 헬멧의 부위가 커지면 무게도 늘었다. 하지만 점점 헬멧이 가볍고 단단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LG 외야수 이형종은 개막을 4일 앞둔 지난 1일 두산과 교류전에서 이용찬의 투구에 손등을 맞고 골절 판정을 받았다. 만일 이형종이 손등 보호대를 착용한 채 타석에 섰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약 2~3주 후 복귀하는 이형종의 왼쪽 손등에 보호대가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유명한 야구 저자인 레나드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를 집필하며 첫 머리로 ‘야구는 두려움과 싸움’이라고 정의했다. 시속 150㎞에 육박하는 단단한 공을 방망이 하나에 의지해 맨몸으로 상대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때문에 두려움을 안고 타석에 선 타자는 성공할 수 없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상대 투수 공에 대한 두려움을 두루 느끼고 있다면 이미 아웃카운트가 올라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무장한 채 타석에 선 타자는 투수 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특히 몸쪽 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무게추는 타자쪽으로 급격히 기운다.
최근 롯데 투수 이승헌이 한화 정진호의 타구에 머리를 맞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된 이후 투수도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온몸을 사용해 공을 던져야 하는 투수 특성을 고려하면 최첨단 신소재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투수가 보호장비를 착용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투수들은 타자들의 몸쪽을 더욱 집요하게 파고든다. 타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돼야 수싸움을 전개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수와 타자의 ‘두려움과 싸움’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있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