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권력’ 법사위 비토권 “각 상임위에 심사 소위 두자”
다시 불붙은 법사위 역할 논쟁 상임위 통과 법안, 자구 심사받아야
법조인 출신 의원들 기득권 논란에
16대부터 별도 심사기구 설치 요구
與 연일 “폐지”… 野 “여당 견제 권한”
전문가 “법률 우월의식, 병목현상 고착”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이 시작되면서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명분으로 다른 상임위원회의 ‘상원’으로 기능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역할을 두고 ‘오래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월권 논란을 낳는 체계·자구 심사가 법조인 출신 의원들의 ‘또 다른 권력’이 됐다는 지적이지만, 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야당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권한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폐지’를 연일 공언하고 있다.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악용해 여야가 마련한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해야 할 법안들을 야당이 가로막는 것을 두고보지 않겠다는 의미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본회의 전에 법사위에서 체계·자구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실제 20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미래통합당 여상규 의원은 “각 상임위에서 한국당 참여 없이 처리된 법안들은 법적 근거가 허용되는 한 관계 상임위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2013년 19대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합의해서 법사위로 넘긴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안’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과정에서 대폭 수정·완화돼 두 위원회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변인은 “체계·자구 심사를 빌미로 법사위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은 계속 묻혀 두는 식으로 악용돼 왔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16대 국회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통합당) 이주영 의원이 처음으로 체계·자구 심사 기구를 따로 두는 법안을 발의한 이후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초선이던 17대 국회에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폐지하고 별도의 상설특별위원회가 그 기능을 하게 하는 ‘국회법 일부개정안’(2006년)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법사위의 권한은 그대로 유지됐다. 국회입법조사처 처장을 지낸 이내영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26일 통화에서 “우리 국회에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이 너무 많다”면서 체계·자구 심사는 법사위에 들어가는 율사들의 기득권”이라고 비판했다. 법률 전문가들이 주로 모이는 위원회이니만큼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다른 상임위가 법안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지 감독하겠다는 특권 의식과 우월 의식이 국회 병목 현상을 고착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는 게 관행이 돼 야당으로서는 체계·자구 심사 폐지와 법사위원장을 여당에 내주는 것을 가장 막강한 비토권을 빼앗기는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임지봉 한국입법학회장은 “요즘은 법안도 특화되고 전문화돼 담당 상임위가 어디냐에 따라 법안에 실리는 법률 용어도 그 분야의 전문용어가 많다”면서 “각 상임위에 체계·자구를 심사하는 소위를 두면 된다”고 지적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