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블]"매몰차게 떠날땐 언제고" e스포츠 기웃거리는 삼성

2000년부터 e스포츠 집중 투자했던 삼성전자
WCG 중단, 게임단 매각 후 2017년 완전히 손떼
왕년의 숙적이었던 T1 게임단 파트너로 재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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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7 11:37 | 수정 2020.05.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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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T1 후원 시작하는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27일 SK텔레콤의 T1 게임단과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외신을 위한 영문 보도자료도 냈지요. T1게임단은 e스포츠계의 ‘우주 대스타’로 불리는 이상혁(Faker) 선수가 속해있는 게임단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에 대한 게임업계 일각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매몰차게 떠날 땐 언제고 왜 자꾸 e스포츠를 기웃거리느냐”는 겁니다.

◇18년간 잘 키워놓고…떠나버린 삼성전자

알고 보면 삼성전자는 e스포츠 업계의 원년 기업입니다. SK텔레콤보다 4년 앞선 2000년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을 창단했고, 최초의 국가 대항 게임 대회 ‘월드사이버게임즈(WCG)’를 만들었습니다. WCG가 한창이었던 2000년대에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WCG 조직위원장을 맡아 “게임 산업 초강국을 만들겠다”고도 했지요. 국내외 게임 붐 형성과 글로벌 e스포츠의 탄생에 삼성전자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2014년부터 돌연 e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WCG 운영과 후원을 중단하고, WCG 상표권을 국내 게임업체 스마일게이트에 팔았습니다. 2016년에는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의 ‘스타크래프트2 ‘팀을 해체하고, 이듬해 12월에는 리그오브레전드(LoL·롤) 게임단마저 매각하면서 무려 18년간 투자해 온 e스포츠에서 완전히 손을 뗐습니다. 이후 e스포츠 대회나 단체에 자사 제품을 후원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죠.

삼성전자의 e스포츠 투자 중단은 실적악화와 그룹 구조조정 탓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2014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각각 10%와 30% 줄었고, 이때 삼성전자와 호텔신라, 제일기획을 중심으로 그룹이 재편되면서 e스포츠를 포함한 스포츠 사업이 모두 제일기획으로 넘어갔습니다.

당시 게임업계는 “삼성전자같은 세계적 기업의 경영이 너무 근시안적”이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10~20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e스포츠는 수년 내에 야구나 축구 못지 않은 인기 종목으로 성장할 것이 뻔해보였습니다. 또 스마트폰, 태블릿·노트북PC, 모니터 등 삼성전자의 제품군과도 잘 맞아떨어졌죠.

e스포츠 주도권을 해외에 뺏기게 된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롤 게임단을 매각할때는 일부 팬 사이에 “아무도 관심 없는 승마에 말은 후원하면서 e스포츠는 왜 버리느냐”는 울분 섞인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해외 기업들이 주도하게 된 e스포츠

현재 글로벌 e스포츠 업계는 미국 블리자드의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와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롤드컵)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뛰어난 한국 프로게이머들 덕분에 글로벌 e스포츠의 중심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죠. 삼성전자가 2년6개월 전 매각한 롤 게임단은 현재 젠지(Gen.G) 게임단으로 맹활약하며 SK텔레콤 T1과 함께 글로벌 e스포츠 흥행에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e스포츠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18년간 갤럭시 프로게임단의 숙적이었던 SK텔레콤 T1을 후원하게 된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란 말이 나옵니다. 삼성전자가 SK텔레콤 T1과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이 회사의 ‘오딧세이’ 게임용 모니터를 홍보하기 위함이라고 하네요. 삼성전자는 젠지 게임단에는 컴퓨터 저장장치 부품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백블]은 기자들이 ‘백브리핑’을 빨리 발음하기 위해서 쓰는 말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는 각 이슈의 속사정을 이야기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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