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이 죽인 스물둘 그녀, 충격의 日 악플러 전화번호 공개 추진
by 도쿄=이태동 특파원입력 2020.05.27 11:49 | 수정 2020.05.27 15:15 일본에서 20대 초반 여성 프로레슬러가 인터넷 악플 공격에 시달리다 숨진 채 발견돼 파문이 일자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NHK 방송과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인기 리얼리티쇼 ‘테라스하우스’에 출연 중이던 프로레슬러 기무라 하나(23)가 지난 23일 혼자 살던 아파트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집 안에 유독성 가스를 발생시키는 약품의 용기가 있었고, 어머니에게 쓴 메모 중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소속사 측은 “유족의 뜻에 따라 사인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경찰 조사 결과 사건으로 볼만한 정황이 없어 기무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비극의 원인은 인터넷 ‘악플 공격’이었다. 기무라는 지난해 9월부터 남녀 합쳐 6명이 한 집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리얼리티쇼 테라스하우스에 출연해왔다. 지난 3월 31일 방영분에서 기무라는 자신이 아끼는 프로레슬링 의상을 남성 출연자가 세탁기에 돌려 망가뜨리자 심하게 화를 냈다. 다소 거친 장면도 있었는데, 이날 이후 소셜미디어 상에서 기무라에게 악플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최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에 기무라는 지난 21일 트위터에 “매일 100건 가까운 솔직한 의견. 상처받은 건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죽어, 기분 나빠, 꺼져’ … 약한 저라서 미안합니다”라고 적었다. 23일 새벽 “사요나라(さようなら·안녕)”이라고 쓴 게시물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왔고, 이후 그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일본 사회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기무라를 추모하는 한편에선 악플로 유명인을 괴롭히는 문화를 규탄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장이 커지자 일본 정부가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일본 총무성 다가이치 사나에 일본 총무성 대신은 26일 “익명으로 타인을 비방하거나 중상(中傷)하는 행위는 비겁해서 용서하기 어렵다”면서 악플 작성자를 쉽게 특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도 일본에서 악플 피해자가 사업자 측에 정보 공개를 청구할 수 있지만,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고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몇 가지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간소화하고 악플러의 전화번호까지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25일엔 집권 여당인 자민당과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에서 각각 국회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모리야마 히로시와 아즈미 준이 회담을 갖고 ‘인터넷에서의 비방·중상을 막기 위한 룰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합의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자민당은 실제로 다음날 ‘인터넷상에서의 비방·중상 등 인권침해 대책을 검토하는 프로젝트팀’ 회의를 처음으로 열고, 다가오는 국회 회기에서 관련 법안을 제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라인,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사업자로 구성된 ‘소셜미디어 이용 환경 정비기구’도 긴급성명을 내고 법에 따라 정보 공개를 요구하면 적절한 범위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고 TBS가 보도했다. ‘기구’는 특별위원회도 설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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