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마사회가 고객만족도 조작했다”...제보 그 후, 보호받지 못한 '마사회 공익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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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의 고객만족도(PCSI) 조작 정황을 언론에 제보한 뒤 마사회로부터 직위해제 처분을 받은 ㄱ씨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문희 기자.

한국마사회의 고객만족도(PCSI) 조작 정황을 언론에 알린 제보자가 6개월째 직위해제 상태로 공익제보자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제보자는 지난 2월 국민권익위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ㄱ씨는 지난해 12월1일 마사회에서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8개월 전인 2019년 4월17일 일요신문에 문서 2건을 제보한 것이 계기였다. 그해 1월2일 마사회 제주지역본부 고객안전부장으로 발령받은 그는 발령 4일 뒤 기획재정부가 당월 중순 실시 예정한 해당 본부 공공기관 고객만족도(PCSI) 현장조사를 ‘철저히 대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임 실무자에게 방법을 전달받아 작성한 ‘2018 고객만족도 조사 대응 계획(안)’ 문서에는 “부서별로 우호고객을 최대한 확보, 우호고객이 답변할 수 있도록 전부서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ㄱ씨는 2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PCSI는 무작위로 표본 고객을 선정해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마사회가 우호적인 고객을 선별한 건, 좋은 점수를 줄 사람만 골라서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는 뜻”이라며 “내 일터가 조작을 일삼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고, 양심에 찔렸다. 당시엔 발령 직후라 경황이 없어 관행을 따랐지만, 퇴직까지 앞으로도 10년 가까이 남았는데 내내 조작에 가담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조작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기사라도 나면 마사회장이 보고 조치를 취해줄 거라 기대했다”고 했다. 일요신문은 해당 제보를 지난해 4월27일 보도했다.

제보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제보 1달쯤 뒤인 2019년 5월10일, 김낙순 마사회장 이름으로 ‘관련 없는 문서 2건을 유출해서 기관 평가에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 유출 경위를 상세히 조사해서 적극 대응하라’는 취지의 지시사항이 나왔다. 며칠 뒤 ㄱ씨는 전산실에서 ‘문서 2건 유출자로 당신이 지목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ㄱ씨는 같은 달 25일 마사회 감사실에 제보자가 자신임을 밝히면서 마사회의 PCSI 조작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후 감사실은 ㄱ씨의 신고 내용이 아닌 내부 정보 유출을 문제삼으면서 마사회 인사과에 ㄱ씨에 대한 중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ㄱ씨의 싸움은 그로부터 1년을 이어갔다. 2019년 11월과 2020년 2월 두차례에 걸쳐 ㄱ씨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개최됐다. 해고 등 징계 의결은 유보됐지만 ㄱ씨는 부장직에서 보직 해제됐다. 이후 징계 의결 중임을 사유로 그 해 12월1일 직위해제 조치됐다. 마사회는 지난 2월 “내부감사가 진행되었으며, 감사결과 당시 언론 제보내용은 사실과 다름을 확인했다”며 PCSI 조작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3월4일엔 ㄱ씨를 ‘공공기록물 보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문서 등 손괴’,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 등 혐의로 경찰 고소했다.

긴 싸움의 과정에서 ㄱ씨는 지난 2월19일 국민권익위에 PCSI 조작 등 마사회의 비리 의혹 총 6건을 신고하며 공익신고자 보호 요청을 했다. 당일 한국마사회 적폐청산 시민대책위원회도 ㄱ씨와 같은 내용을 담아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ㄱ씨 사례를 들은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는 지난 4월1일 ‘권익위에 마사회의 고객만족도 조사 조작 의혹 신고자에 대한 신분보장 조치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신고자에 대한 직위해제는 불이익조치를 금지한 부패방지법에 위반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권익위는 지난 4월13일 ‘언론 제보는 부패방지권익위법 상의 부패행위 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추후 인사위원회 등에서 불이익조치를 받을 경우 다시 신분보장 조치 요구를 신청할 것을 신고자에게 안내했다’는 취지로 참여연대에 회신했다. 참여연대는 같은 달 29일 다시 성명을 내고 “권익위의 소극적 판단에 유감을 표한다”며 “ㄱ씨가 언론제보 이후 해당 내용을 마사회 감사실에 신고한 만큼 ㄱ씨에 대한 직위해제는 부패행위 신고로 인한 불이익 조치로 볼 수 있으며, 부패방지법 제67조 준용규정에 따라 신분보장 조치 대상이라고 판단한다”고 의견서를 제출했다.

ㄱ씨는 “어떤 사람이 불의를 참다못해 제보를 마음먹었는데, 부패방지법이나 공익제보자보호법 등에 딱 맞게 일을 벌이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직위해제된 상태라 월급이 계속 삭감돼 들어오는 상태다. 그렇다고 직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니 재취업하거나 투잡을 뛰기는 힘들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라면서 “이따금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우울증 약을 먹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직위해제된 상태로 회사에 나가던 기간에, 일부 동료·후배들에게서 ‘힘내라’는 응원을 받았다. 그들도 보고 있는 거다. 내가 어떤 처지에 놓일지, 진실을 밝히는 데 성공할지 아니면 그냥 혼자 죽거나 망하거나 할지”라며 “‘제보는 짧고 고통은 길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공익제보자는 늘 궁지에 내몰려왔다. 그런 환경에서 누가 조직의 부패·비리에 대해 제보할 생각을 갖겠냐”고 물었다.

ㄱ씨는 이날 오후 1시 한국마사회 적폐청산 시민대책위원회가 개최하는 ‘감사원의 한국마사회 제대로 된 감사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해 자신의 얼굴과 신분을 공개할 예정이다. ㄱ씨는 “마사회의 압박을 버티며 언론에 제보를 많이 했지만 바뀐 것이 없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