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어릴때 헤어진 장모, 정서적 유대 있으면 부모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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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7 10:05 입양한 자식이 법적인 친자(親子)인지 판단할 때는 동거·양육 기간 등 형식적 요소보다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정서적 유대를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사망한 A씨의 동생이 A씨의 입양 딸 B씨를 상대로 낸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친생자 관계가 아니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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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db

법원에 따르면, 결혼한 지 3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던 A씨는 1980년 이웃 소개로 그해 출생한 B씨를 데려다 키우기로 했다. 이웃으로부터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입양시키거나 보육 시설에 맡기는 것을 원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B씨를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딸로 출생 신고까지 했다. 이후 A씨는 B씨를 약 5년간 돌보다 1985년 남편과 이혼하면서 B씨와도 헤어지게 됐다. A씨는 1988년 재혼했다 1999년 다시 이혼했다. 그 사이 B씨와는 거의 왕래가 없었다. 그 동안 B씨는 A씨의 첫 남편과 살았다.

A씨가 B씨와 다시 연락하게 된 건 B씨가 성인이 된 2000년 즈음이었다. A씨는 그 무렵 아이를 출산한 B씨를 만나기 위해 산후조리원을 찾기도 했고 아이 돌잔치에도 참석했다.

그러다 2015년 A씨가 사망하자, A씨의 동생은 B씨가 A씨의 실제 자식도 아니고 30년 가까이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다며 친자 관계를 부인하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법적으로 친생자 관계라고 봤다. 비록 출생 신고는 거짓이었지만 A씨 부부가 B씨를 데려와 키울 당시 입양 의사가 있었고 한동안 가족으로서 함께 생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심은 ‘허위 출생신고’가 입양으로 인정이 되려면 B씨 생부모의 승낙이 있거나 B씨가 만 15세가 된 이후 입양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런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친생자 관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B씨조차 자신의 생부모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부모의 입양 승낙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A씨가 사망할 때까지도 B씨는 자신이 입양된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입양 사실을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심을 다시 뒤집었다. 재판부는 “양친자의 신분적 생활 관계는 현실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감호·양육 여부를 주된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고 정서적 유대관계 등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2000년 이후 서로 왕래했다는 점을 근거로 두 사람 사이에 부모와 자식 간의 ‘정서적 애착’이 있다고 보고 출생신고가 입양 신고를 갈음했다고 판단했다. 사건 소송 중에도 B씨가 A씨를 어머니로 생각한다는 뜻을 밝히고 이혼으로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동안에도 A씨를 그리워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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