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문학상] 한국어학당 공간 생생하게 구현…몰입도 높았다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심사평]
예심에서는 회고록, 대체역사, 음모론, 인공지능(AI), 범죄수사물이 다수를 이루는 가운데 청년실업이나 페미니즘 퀴어, 입시 비리와 같은 동시대의 관심사가 반영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작품 전체가 줄거리의 나열에 불과한 응모작이 많았고, 현재적 문제의식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인물을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그치거나 자극적인 서사 전개를 위해 개연성 없이 폭력적인 장면을 삽입하는 작품도 여럿이었다. 작가의 취향과 관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개성 강한 작품들도 있었으나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는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꿈의 추락> <정육점 여자> <회색인> <코리안 티처> <외지인> <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 <하나를 위한 서프라이즈 파티> <약하디약한 우리는>이었다. 8편 중 심사에서 주로 논의된 작품은 <회색인> <코리안 티처> <외지인> <약하디약한 우리는>이었다.
<회색인>은 비밀리에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의 운영자로 발탁된 인물을 중심으로, 이들 커뮤니티를 통해 현재 우리 시대의 담론 지형을 파악하고자 한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인물(운영자)과 해당 커뮤니티와의 관계 설정이 단순하고 도식적이라는 점, 운영자 권한을 대물림한 아버지의 서사가 부각되면서 소설의 주제 의식이 흐려진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약하디약한 우리는>은 특유의 개성 강한 문체와 경계를 넘는 상상력이 결합되어 현재 젊은 예술가들의 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엘’이라는 주변 인물과 그 서술방식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나 단편적인 서사가 유기성 없이 나열되고 만다는 점과 중심인물의 유아적인 시선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아버지의 애인이 동물로 변하는 설정은 도리어 소설의 신선함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외지인>은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두 인물의 시점이 교차서술 되면서 국적에 따른 직장 내 차별과 입양아, 이주 여성에 관하여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담담한 어조와 안정된 문장이 장점으로 꼽힌 작품이었다. 그러나 입양아나 이주 여성에 관한 시선이 세밀하지 못하고 인물들이 서사적 연결고리 없이 감정적으로 동화되고 손쉽게 연대하는 점 등이 인물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또한 각 인물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이 다소 관습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당선작인 <코리안 티처>는 어학당에서 근무하는 네 명의 한국어 강사를 중심으로 교육노동자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한국어학당이라는 공간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구현하면서, 그와 관계된 인물들이 풍부하게 등장하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각 인물이 처한 서로 다른 상황과 그에 따른 내면이 가독성 높은 문장으로 드러나 있어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이 용이하고 몰입도도 높았다.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등장하기에, 비단 어학당 내 고용 문제뿐만 아니라 언어 교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와 오해, 글로벌 계급 문제 등 좀 더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장점으로 보였다. 그 과정에서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학생인 외국인 노동자의 서사가 다소 단편적인 관점으로 다루어진다는 것과 네 명의 인물이 서사적 유기성 없이 끝까지 개별적으로만 작동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러나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특정 공간과 직업이 네 인물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는 작가의 태도가 일관되고 냉철하다는 점에 신뢰를 보내게 되었다. 당선자에게 기대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단(강영숙 김유진 서영인 신샛별 오혜진 장은정 최진영 편혜영)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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