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 너무 많아' 이런 기분 안 들게 하는 법

[서평] 장제우의 '세금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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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애계의 이슈는 '24시간 활동지원제도 보장'과 '65세 활동지원 연령제한 폐지'이다. 장애계는 오래전부터 24시간 활동지원 보장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거동조차 할 수 없는 독거 중중장애인에게 예기치 못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죽음의 문턱이 가까워질 수 있다.

장애인이 65세 이상이 되면 활동지원 대상자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되어 지원시간이 4시간으로 확 줄어드는데, 이 또한 장애인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앞서 인권위에서도 장애인의 65세 활동지원 유지를 권고할 만큼 가벼운 사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24시간 활동지원제도 보장, 활동지원 65세 연령제한 폐지는 예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 까닭에, 기존 보건복지부로 향했던 장애계 운동이 최근엔 기획재정부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을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발달장애 동생의 탈시설 이야기 '어른이 되면'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장애인권의 선봉장이 된, 지금은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인 장혜영 감독은 한 언론인터뷰에서 희망하는 상임위를 묻는 질문에 기획재정위를 꼽았다. 그 이유로 "장애인 이슈에도 예산이 동반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이전부터 '65세 이상 노인과의 형평성'과 '예산'을 이유로 제도 개선에 어려움이 많다는 뜻을 내비쳤다.

현재 장애계에 몸담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일련의 소식들을 접하며 '인간의 존엄'과 '예산'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어떤 해결책(물론 인간의 존엄이 중요하다)을 도출해야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최근 <세금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당신의 세금이 우리 모두의 삶을 책임진다면

경제 지식이 부족하여, 교양을 쌓아보고자 읽게 된 '장제우의 <세금 수업>. 워낙 서평들이 훌륭해서 책을 구입했는데, 뒤늦게 발견한 '당신의 세금이 우리 모두의 삶을 책임진다면'이라고 적힌 부제를 읽고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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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제우의 세금수업 증세와 보편복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책 "장제우의 세금수업" ⓒ SIDEWAYS

 
책의 저자 장제우씨는 독립민간연구소 '균형사회연구센터'의 객원 연구원을 지냈으며, 고용과 주거, 조세와 복지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매체에 칼럼을 게제하고 강연을 다니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장제우씨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은 '절세'가 아닌 '증세'에 대한 꿀팁을 나누고자 한다"며 부제처럼 당신의 세금이 우리 모두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를 향한 '도움말' 임을 명시한다.

들어가는 글을 읽고, 평소에 갖고 있던 장애인의 존엄한 삶에 대한 고민이 '증세' 로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의 증세가 아닌 '부자' 증세만을 이야기하고,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혹시 정치인들의 쪽지 예산(지역구 예산)으로 전용되는 건 아닌지 사용처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지금 현실이다.

어떤 이들은 예산 집행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증세에 동의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말도 분명 일리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싸움으로 돌입하는가 싶은데, 이 책은 분명 '증세'가 먼저라고 논한다.

정치의 각성을 이끄는 위력적인 힘, 세금

저자는 한국사회에 팽배한 조세저항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세 정의가 확립된다는 전제 하에 세금을 내겠다는 여론이 크게 형성되었기에 증세에 앞서 정치의 자성을 도모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당연하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정치인의 자성을 믿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는 일. 저자는 정치인을 각성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높은 세금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저자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자가 저렴한 비용을 지불할 때와 고액의 대가를 치를 경우 기대하는 품질이 천양지차임을 예로 들며, 세금도 이와 같다고 설명한다.
 

"많은 세금을 내는 국민은 그만큼 정치를 대하는 눈높이가 높아지고, 제발 정치에 관심 좀 가지라고 누가 타이르고 보채지 않아도 알아서 야무지게 정치를 감시하게 된다. 고가의 재화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이에 상응하는 고품질을 깐깐하게 따지듯, 높은 세금에 부응하는 고품질의 정치를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다." - 155P

 
누구에게나 보편복지

조세 저항이 줄어, 증세가 실현된다면 세금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저자는 복지 정책에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보편성'을 강조한다. 내가 낸 세금이 어려운 사람들만을 위한 선별복지에 집중된다면 증세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어 세금의 대부분을 장애인의 활동지원에만 선별 복지로 쓰인다면 존폐여부는 물론 당장 서비스 질도 보장할 수가 없게 된다. 왜냐면 서비스 질이 나쁘다고 해도 활동지원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악영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선별 복지는 서비스 질의 하락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보편 복지가 시행되어야 한다. 가령 활동지원 정책을 장애인에게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폭넓게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병원에 입원한 환자까지 포괄한다면 활동지원의 서비스 질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게 되어 질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코로나19 시기의 전 국민 재난극복지원금 혹은 서울시의 사각지대 자영업자를 위한 유급병가 제도 등의 복지에서도 더 많은 재원으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스웨덴의 잉바르 카를손의 저서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의 구절을 인용한다.
 

"만약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만이 아동수당, 무상의료 또는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는다면, 나머지 사회집단들은 그러한 혜택이 가능한 한 값싸게 지급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들면서 급여의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왜냐면 이 급여는 자신들은 받지 못하는 것이고, 또 여기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나쁘다고 해도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 192p

 
증세가 누구에게나 사회안전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에 동의한다. 애초에 다시 고민의 시작점인 중증 장애인의 24시간 활동지원제도 보장, 65세 활동지원 연령폐지로 돌아가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들어 10조의 예산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10조를 두고 예산싸움을 하기보다, 증세를 통해 20조를 만들어 이 세금으로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망 역할을 해주는 게 더 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세금과 복지로 장애인, 한 부모 가정, 독거노인 등등 누구나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저자가 얘기하는 증세에 찬성한다. 또한 저자의 바람대로 세금으로 모두의 삶이 책임지는 세상이 분명 올 것이라 믿는다.
 

"세금과 복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협력의 문명' 이며 모든 협력의 문명이 그러하듯 혼자서는 불가능한 수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중략) 다치거나 병에 걸린 이, 장애가 있는 이, 빈곤아동, 한부모 가정, 임신이나 육아 중인 가정,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한 이 등등 사회에는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취약계층이 있게 마련이다. 각 개개인은 이들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없지만, 세금과 복지라는 사회연대의 수단을 활용한다면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다. " - 43p

 
이제 사회연대의 수단으로 그리고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해 증세를 논할 시점이 온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