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법만으로는 제2 김용균 못 막아
by 이효상·정대연 기자 hslee@ kyunghyang.com2인1조 근무·위험 설비 하도급 등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포함 안 돼
전형적인 ‘추락·질식사’ 사고 반복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끼이거나 터지거나 추락하거나 질식해 죽는, 이전에도 보았던 사고들의 재연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 이후 전면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올해부터 시행됐으나 일터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오전 11시10분쯤 강원도 삼척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ㄱ씨(62)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합성수지 공급용 컨베이어벨트에 ㄱ씨의 목이 끼인 것이다. 사고 발생시간은 오전 9시25분쯤으로 추정된다. 사고 발생 이후 약 2시간 동안 아무도 ㄱ씨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2018년 김용균씨의 죽음은 ‘2인1조’ 근무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발전소를 돌며 컨베이어벨트 작동 현황을 살피고 기계에 떨어진 낙탄을 치우는 업무를 맡았다. 작업자가 낙탄 제거 중 기계에 끼일 경우 기계를 멈춰줄 사람이 필요했기에 노동자들은 ‘2인1조’ 근무를 요구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한밤에 홀로 순회 점검에 나선 김씨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인 지 4시간여 만에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와 유사한 사고가 ㄱ씨를 덮친 것이다.
지난 22일 광주의 폐목재 처리 업체 조선우드에서는 노동자 ㄴ씨(26)가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파쇄기에 끼인 수지를 빼내려다 참사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ㄴ씨 역시 혼자 작업하다 사고를 당했다.
컨베이어벨트 등 기계설비에 끼여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는 매년 100건 이상 발생한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18년 113명, 지난해 106명이 끼임으로 사망했다. 지난해 산안법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노동계는 위험작업에 대한 ‘2인1조’ 근무 원칙 명시를 요구했다. 또 컨베이어벨트 등 위험 기계설비를 다루는 작업이 하청에 맡겨지지 않도록 하도급 제한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정 법에는 두 가지 모두 담기지 못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실질적인 안전조치들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라도 2인1조 근무 원칙을 명기해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보건규칙’은 작업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을 담은 것으로 무려 673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예컨대 파쇄기엔 덮개 설치를, 컨베이어벨트엔 비상정지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아,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2일 경기 용인시의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ㄷ씨(32)가 패널 설치공사 중 9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매년 350명가량이 죽는 추락사다. 안전보건규칙은 추락 방지를 위해 안전난간·추락방호망 설치, 안전대 등 개인보호구 지급을 명시하고 있지만, ㄷ씨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하루 전인 21일에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파이프 용접작업을 진행하던 ‘물량팀’(하청업체에서 재하청을 받아 일하는 팀)’ 노동자가 용접용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안전보건규칙은 아르곤 사용 시 산소농도 측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10만원대 산소농도측정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매년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경남 고성 하이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40대 노동자가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 사망한 바 있다.
2008년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물류창고 중대재해는 올해 38명이 숨진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 중대재해로 반복됐다. 지난 19일 충남 서산의 LG화학 공장 촉매센터 폭발사고는, 꼭 1년 전 LG화학이 충북 제천 하청업체에서 일으킨 폭발사고와 닮은꼴이다. 올해는 1명이 죽고 2명이 다쳤으며, 지난해에는 3명이 사망했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1년 전처럼 사고 원인이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고는 또 일어날 것이다.
위험 예방 비용보다 저렴한 사고 처리 비용은 600여개의 규칙이 무력화되는 원인이 됐다. 지난 10년간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평균 벌금액은 432만원이다. 민주노총은 25일부터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는 “형량 자체가 낮은 문제와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