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오프사이드]프로스포츠 문화의 ‘성인지 감수성’
by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아마 잘해보려다가 그리되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상황에서 FC서울 구단은 경기 분위기도 살리고 마침 K리그가 세계 곳곳으로 중계도 되니 홍보 기회로 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성인용품 ‘리얼돌’이 관중석에 등장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특한 마음으로 개인적 이득을 취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잘해보려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꼭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고 따라서 언제든지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는 비상한 상황에서는, 단지 잘해보려는 마음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니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격려할 게 아니라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번 사건은 프로스포츠 문화의 ‘성인지 감수성’의 수준이 취약하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성인지’와 ‘감수성’은 일상적인 말의 느낌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성인지’는 단순한 성별 구분이나 성역할의 강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성 관념의 고착된 상태가 빚어내는 성별 간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뜻한다. 그것은 곧 차별이 되고 혐오로도 이어진다. ‘감수성’이라는 말도 정서적인 상태를 뜻하기도 하고 예술적인 상상력을 뜻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이나 업무에서 성에 대한 불평등이나 차별적인 양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뜻한다.
세계 스포츠에서 ‘성인지 감수성’은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국제축구연맹은 방송사들에 ‘매력적인 여성’을 반복적으로 ‘줌인’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다. 사진 전문 에이전시 ‘게티이미지’는 ‘월드컵에서 가장 섹시한 팬’이라는 제목으로 응원하는 젊은 여성들의 사진만 별도로 편집하여 게재하였다가 급히 갤러리를 없애고 내부 진상조사를 벌인 적 있다.
스포츠가 기본적으로 젊은 남녀 선수들이 신체를 활용하여 경쟁하는 행위이고 첨단기술을 탑재한 미디어는 그 행동을 마치 초고속카메라로 잡아내듯이 중계한다. 어떤 경기의 경우 복장이 아주 간단할 수밖에 없고 중계 화면은 그런 상태를 반복하여 잡을 수밖에 없으며 그때 중계진은 그 장면들을 설명하게 된다. 이때 경기 상황이나 기술과는 관련 없는 신체에 대한 과도한 묘사가 발생할 수 있다.
경기장 안에서도 주의해야 한다. 작전을 지시할 때는 물론이고 훈련을 하거나 단체 생활을 할 때 성인지 감수성은 아주 높은 수준으로 작동해야 한다. 처음에는 무심코 실수하다가 나중에는 희롱이 되고 폭력이 된다. 아니, 대다수 사건이 증명하듯이 애초의 ‘실수’도 나중의 폭력을 한편 위장하고 또한 준비하는 예비동작일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적 대상화’와 연결된다. 여기서도 ‘대상화’를 ‘사물을 일정한 의미를 가진 대상으로 인식함’ 정도의 사전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당대의 뜨거운 용어이므로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마사 누스바움에 따르면 대상화된 사람은 ‘손상된 아이덴티티를 부여받고 오명과 낙인을 뒤집어쓰게’ 된다. 남성에 의한 성적 대상화는 여성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물건처럼 취급하고 그들을 지배하려 시도’하게 되며 여성을 ‘그렇게 취급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
자, 다시 FC서울의 ‘리얼돌’ 파문을 되새겨보자. 잘해보려다가 ‘실수’한 것을 두고 ‘성인지 감수성’에 ‘성적 대상화’ 같은 용어들이 난무하니 심하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리얼돌’이 문제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여성 마네킹’이면 괜찮다는 것인가. 코로나19가 진정되고 관중이 몰려들면 중계 카메라는 다시 젊은 여성들을 줌인하고 캐스터와 해설자는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농담을 해도 되는가. 심야의 스포츠 프로그램 여성 진행자는 왜 그렇게 입어야만 하는가. 여성 선수들은 일상적으로 어떤 문화에 놓여 있는가. 지금 당장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거울에 스포츠문화의 모든 것을 비춰보자. 이번을 계기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고 제도가 강화되어야 한다. 제재금 1억원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