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컨트리 뮤직과 트로트
by 이지선 뉴콘텐츠팀장미국의 컨트리 뮤직은 흔히 한국의 트로트와 비교된다. 한국교원대 손민정 교수는 <트로트의 정치학>에서 “미국의 촌뜨기 음악 컨트리 뮤직은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의 심장을 상징하면서 가장 미국적인 정서, 가장 애국적인 노래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했다. “미국에는 ‘컨트리 뮤직 LP판을 거꾸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떠나간 애인, 잃어버린 트럭, 일자리, 개가 모두 돌아온다는 것”이라는 농담도 있다고 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트로트와 컨트리는 닮은 점이 많다.
최근 몇년 사이 컨트리 뮤직계에서 파란을 일으키는 이가 있다.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다. 이 32세 여성 컨트리 가수는 한국에선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미어워드 컨트리 부문에서 수차례 수상을 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실력 이외의 것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롤링스톤은 2018년 기사에서 그에 대해 “장르의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컨트리 음악의 전통적인 보수주의보다 환경에 대한 경외 등 자신의 신념 체계를 바탕에 두고 장르를 밀고 당길 수 있다”고 평했다. 간단히 말하면 전에 없던 파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의 노래 ‘너의 화살표를 따라가라(Follow your arrow)’가 대표적인데, “많은 소년들에게 키스를, 많은 소녀들에게 키스를, 만약 그것이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이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동성애를 다룬 이 가사 자체로 ‘컨트리 음악에서 어떻게!’라는 논란거리는 충분했다. 머스그레이브스는 “컨트리 뮤직의 뿌리를 보면 이혼 등 중요하지만 다루어지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노래해왔다”고 반박한다.
“여성들은 샐러드에 양상추가 아니다. (고명과 같은) 토마토다”라는 발언, 이른바 ‘토마토 게이트’가 터져나온 컨트리 음악계에 대해서도 머스그레이브는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컨트리 라디오 차트) 톱 40을 보면 여성이 3명이다. 남성 아티스트들과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수용적이거나 친절해야 한다는 압박을 더 느끼곤 한다”고 그는 말한다.
컨트리 업계의 견고한 아성에 누군가 균열을 내고 있다면, 한국의 트로트는 ‘뽕짝’이라며 평가절하됐던 과거를 털어 버리고 있다. 국악, 힙합, EDM 등과 결합하는 유연함도 엿보인다. 손 교수는 “노골적이고,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말하는 이 노래가 힘을 가지게 된 것에서 그만큼 사회가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엔카의 아류라고, 촌스럽다고, 연세 드신 분들만 즐기는 장르로 여겨졌던 트로트가 묵었던 갈증을 풀어주는 음악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컨트리와 트로트의 변신을 보며,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본다.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적, 통제 불가능적 요소에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의 변화에 민감하게 변하고 적응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변화의 폭과 속도가 넓고 빠른 요즘 같은 시대엔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함’의 미덕은 여전하지만, ‘변화를 응시하고, 온몸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의 가치가 더 긴요한 순간이 왔다. 손 교수는 트로트 연구 과정에 대해 “스스로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스스로를 깨는 힘이 변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