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다시 찾아온 예언자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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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상자와 파란 상자가 있다. 빨간 상자엔 1만원이 들어있고, 파란 상자엔 100만원이 들어있거나 혹은 비어 있다. 당신의 마음을 정확히 읽는 점쟁이가 파란 상자에 돈을 넣을지 말지 결정했다. 당신이 상자 두 개를 모두 가져갈 것이라면, 점쟁이는 벌써 파란 상자를 비워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파란 상자만 가져갈 것이라면, 이미 점쟁이는 100만원을 넣어 뒀을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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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유명한 뉴컴의 역설이다. 언뜻 생각하면 둘 다 가지는 것이 이익이다. 무조건 1만원은 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쟁이는 당신의 행동을 예측했다. 그러므로 파란 상자만 가지면, 100만원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점쟁이의 행동은 이미 끝나지 않았는가? 현재의 선택이 과거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으니, 두 상자를 다 갖는 것이 더 이득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점쟁이가 이미 읽었으니…. 수십 년째 논쟁 중이다.

문제를 조금 바꿔보자. 빨간 상자에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방역에 실패하여 다수가 사망하는 미래가 들어있다. 파란 상자에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방역에 성공하여 희생을 최소화하는 미래가 들어있거나 ‘혹은’ 없다. 모든 이가 파란 상자를 선택할 요량이라면, 분명 파란 상자에는 바람직한 미래가 있다. 그러나 각자 제멋대로 상자를 골라, 즉 두 상자 다 가져가면, 파란 상자에는 아무것도 없다. 위생의 여신, 히기에이아는 과연 파란 상자를 비워 두었을까? 채워 두었을까?

두 번째 상황은 뉴컴의 논리와는 약간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지금 우리의 행동에 의해서, 히기에이아가 이미 과거에 내린 결정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선택을 정당화할 것이다. ‘거봐라. 원래부터 파란 상자에 아무것도 없지 않았느냐?’라고 말이다.

1877년, 밀라노 남쪽 피아첸차에서 희한하게 생긴 유물이 발견되었다. ‘피아첸차의 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청동 조각은 말 그대로 간 모양이었다. 각 부분에 아직 다 해독되지 못한 글이 적혀 있다. 고대 로마에는 양이나 닭의 창자를 보고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세상의 미래를 예측하는 자가 있었다. 이들을 ‘하루스펙스(haruspex)’라고 하는데, ‘하루’는 내장, ‘스펙스’는 본다는 뜻이다. 수메르문명에서 유래한 오랜 전통이다. 구약 에스겔서에도 바빌로니아 왕이 짐승의 간으로 점을 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2020년, 하루스펙스의 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의사가 점쟁이의 역할을 내려놓은 지 수천 년이 지났는데, 다시 그 일을 떠맡게 되었다. 재감염자가 나왔다는 말에 환율이 요동치고, 백신이 개발된다는 말에 주가가 폭등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이다. 불안한 이들은 질병관리본부의 ‘예언’만 바라보며 실망과 안도의 한숨을 교차 반복한다. 예전에는 닭 간이었고,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다. 물론 로마 시대의 하루스펙스보다는 훨씬 믿음직스럽지만.

“미래가 우리 눈앞에서 현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급변의 시대, 인간이 이토록 한 치 앞도 확신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철학자 에릭 호퍼의 말이다. 그동안 쌓아 올린 문명은 이토록 취약한 것이었을까? 역사책에서 현재에 관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고 호퍼는 단언한다. 과거 세상과 너무 판이하다. 대신 인간의 조건, 즉 심리에 관한 통찰이 원하는 해답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인간 스스로 인류사에 기여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미래에 관한 예언은 호퍼의 말마따나 ‘우리 시대의 의미 있는 역사는 우리가 만든다는 가정’하에 해야 한다. 사실 지금의 팬데믹도 과거의 우리가 선택한 미래다. 히기에이아는 진작에 인류의 미래를 결정해 뒀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행동을 통해, 그가 내린 과거의 결정을 바꿀 수 있다. 두 상자를 모두 가져갈 것인가? 파란 상자만 가져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