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위상 추락한 책, 문 닫는 동네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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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이름과 똑같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을 뒤흔들어 놓은 지 벌써 여러 달이 되었다. 요동치는 세계의 혼란을 지켜보며 이제까지 누려오던 일상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불안도 짙어졌다. 그런 가운데 전염병과 관련한 책들이 미디어의 관심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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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진 | 마포중앙도서관장

코로나19를 예견했다는 내용으로 화제를 모은 책은 딘 쿤츠의 소설 <어둠의 눈>과 데이비드 콰먼의 <인수 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다. 쿤츠의 책은 지난 4월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중국의 우한지역을 연상케 하는 ‘우한 400’이라는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소재로 하고 있고, 떠도는 음모론과 유사한 내용 때문에 이 책의 화제성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 콰먼의 책은 허구가 아닌 과학적 논증을 통해 이미 10년 전에 오늘날과 같은 인수 공통 전염병의 대유행을 예고했다는 점과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의 충격이 맞물리면서 <어둠의 눈>을 능가하는 화제를 모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저자인 데이비드 콰먼의 인터뷰도 줄을 이었다.

하지만 두 책의 화제성과 달리 책 읽는 인구는 여전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발표된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성인과 학생 모두 직전 조사에 비해 독서율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이전까지 줄곧 책 읽기의 장애요인으로 꼽혔던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를 제치고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를 이용’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은 비율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마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 가사처럼 어쩔 수 없는 올드 매체의 패배라는 면죄부가 주어진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책이건 다른 미디어건 결국 그 형식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담겼을 때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소비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책이라는 매체의 소비가 줄어든 것은 책만이 담을 수 있는 콘텐츠를 외면했기 때문은 아닐까? 책을 많이 팔기 위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좇아가다 보니 책이 담아낼 수 있는 독보적인 콘텐츠를 잃어버렸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도서관은 아직도 이전의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관 기간 동안 전자책과 오디오북 같은 디지털 콘텐츠의 이용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임시방편의 대출서비스도 늘 빠른 시간에 예약이 만료되는 것을 보면 책 읽는 인구가 줄었다기보다는 읽을 만한 책, 사고 싶은 책의 공급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 입장에서 이용자에게 권하고 싶은 좋은 책 중에는 시중에서 구입할 수 없는 절판된 책, 새로운 판형으로 다시 나왔으면 싶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오래된 책들도 많다. 반면에 저자의 이름에만 기대어 졸속으로 제작된 책, 이전의 베스트셀러들과 비슷한 주제와 제목을 가진 책, 아마추어 작가들의 자비 출판물까지 매일매일 쏟아지는 책들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이런 책들이 독자의 주머니를 열고, 꾸준히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도서관 주변의 동네서점 세 곳이 문을 닫았다. 어쩌면 그사이 모르는 가게의 폐점이 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과 좋은 책의 절판 사이에서,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책과 문 닫는 책방 사이에서 나는 깊이 고민한다. 상품화돼버린 책의 위상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 역시 새로운 감염병이 풍토병으로 정착해 반복되리라는 책 속의 ‘엔데믹 예언’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