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27] 일확천금 베푸는 성인에서 역병의 수호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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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6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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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초 베네치아 성모의 거장, 성(聖) 코로나, 1350년경, 나무판에 템페라, 155 x 48 ㎝, 코펜하겐, 덴마크 국립 미술관 소장.

고운 얼굴의 젊은 여인이 왼손으로는 왕관을 감싸 쥐고, 오른손에는 야자수 이파리 두 장을 들고 있다. 가톨릭의 성녀 코로나다. 최근까지는 수많은 성인 가운데 미미한 존재였으나, 어쩌다 이름이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역병의 수호신'이라고 알려지며 인터넷을 타고 각광받고 있다.

로마의 '팔라초 베네치아의 성모자상을 그린 거장'이라고만 알려진 이 화가는 생몰년이 확실치 않고 다만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1350년경에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박을 바탕으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가볍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우아한 손놀림, 매혹적 색채와 선이 고운 옷자락 등은 전형적 시에나 화파의 양식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같은 크기 나무판에 그린 성 빅토르와 함께 예수 탄생을 그린 제단화의 일부로 시에나 대성당에 있었다. 170년경 로마 황제의 박해를 받아 순교한 성 빅토르는 시에나의 네 수호성인 중 하나였고, 성 코로나는 성 빅토르를 옹호하다 함께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순교한 지역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성 코로나는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야자나무 두 그루에 사지가 묶인 채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성인이 들고 있는 야자수 잎은 고통을, 왕관은 그녀의 이름이자 승리를 상징한다.

성 코로나는 아쉽게도 역병을 치료해 주는 성인이 아니라 정성스레 모시면 도박이나 보물찾기에서 일확천금을 베푸는 성인으로 숭배를 받아왔다. 997년 이래로 독일 아헨에서 그녀의 성유골을 모시고 있다고 하니, 전염병이 잦아들면 성지순례 행렬이 시작될 것 같다. 성인께서 불황에 빠진 세계 경제를 살려주실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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