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의 천국된 안동댐 45년… 자연 다큐멘터리 연출

수자원공사 안동권지사 45년 근무한 권영목씨 산증인… 촬영 사진으로 본 안동댐의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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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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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원공사 제공

경북 안동은 안동댐과 임하댐이 준공된 이후 쌍둥이 호수를 품게 돼 '호반의 도시'로 불린다. 낙동강 하구로부터 340㎞ 상류지점에 위치한 안동댐은 1976년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 양수(揚水) 겸용 발전소다. 총 저수용량은 12억 4800만t. 댐의 주된 기능은 용수 공급이다.

이러한 순기능이 있는 반면 안동댐 주변은 각종 규제에 묶여 45년 전 모습 그대로다. 그럼 호수의 생태계도 그대일까.

그동안 안동호는 외래어종인 배스와 블루길이 판을 치면서 토종 물고기는 씨가 말라버린 것처럼 비쳐졌다. 댐 축조와 함께 이뤄진 무분별한 수입 어종 방류가 하천형 수중 생태계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45년이 지난 현재의 안동호는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호수(湖水)형 생태계로 질서를 찾았다. 휴전선 DMZ처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자연 스스로 훼손된 환경을 복원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수자원공사 안동권지사에 45년간 근무한 권영목(66·사진작가)씨는 누구보다도 안동호 생태계를 잘 아는 산증인이다. 수십 년간 안동호 주변을 누비며 동·식물을 촬영한 권씨는 안동호의 달라진 모습을 전하고 있다. 그는 수년 전 안동호 인근 야산에서 천연기념물 328호 하늘다람쥐를 처음 촬영하기도 했다. 권씨는 "인공으로 만든 호수는 주변 자연환경 질서를 파괴하는 줄만 알았는데 45년 동안 지켜본 결과 안동호가 호수 생태계의 새 질서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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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가리. 2 하늘다람쥐. 3 수달. 4 원앙. 5 백로. 6 파랑새.

◇줄어든 외래종 되돌아온 토종

안동댐 축조로 인공호수인 안동호가 만들어지자 새 어자원(魚資源)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기관·단체,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치어(稚魚)를 방류했다. 낙동강에 서식하지 않던 대형 어종과 낯선 외래어종도 이때 들어왔다. 배스와 블루길, 떡붕어, 찬넬메기, 백연어, 초어 등이다. 인공호수에 물고기를 많이 풀어놓자는 생각뿐이었지 생태계 교란은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댐 준공 이후 처음 10년간은 붕어와 잉어, 메기와 동자개, 강준치 등 호수형 토종 민물고기의 천국이었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 낚시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낚시가게로 한몫 잡았다는 사람도 늘었다.

이후 1990년대 중반 배스와 블루길이 토종 어류의 치어·알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며 빠른 속도로 번식했다. 호수 어디나 배스와 블루길 천지였다.

하지만 이런 현상도 잠시였다. 10여 년 주기로 변화하고 있는 안동호 수중 생태계는 변화를 거듭했다. 이제 배스보다 토종 물고기가 제법 많아졌다. 대부분 사라졌던 동사리, 피라미, 갈겨니, 참마자 등 하천형 생태계의 소형 어족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어민 김대일(61)씨는 "붕어와 잉어 수가 줄면서 이를 먹이로 하는 배스와 블루길 수도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 같다"며 "최근엔 댐 상류 와룡면 주진교 일대에서 낚시를 하면 쏘가리가 더 많이 잡힌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자연생태 복원은 1993년 가두리 양식장을 철거하면서 본격화됐다. 댐 상류 수역에 대한 오폐수 정화시설 확충과 단속이 강화된 것도 이때였다. 이후 안동호 수질은 지금까지 1급수로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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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물총새. 8 독수리. 9 후투티. 10 호랑나비. 11 호반새. 12 멋쟁이새.

◇자연 다큐멘터리 연출하는 조류 생태계

안동호 인근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소나무 숲은 매년 봄철마다 무리지은 왜가리나 백로가 장관을 연출한다. 바로 앞 하천에 3~4월이면 산란기 빙어 떼가 거슬러 올라와 백로들에겐 '천혜의 보금자리'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고스란히 연출하는 것은 빙어와 백로뿐만이 아니다. 안동호에 서식하는 조류는 87종. 여름엔 쇠제비갈매기에 이어 겨울엔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이 수천마리씩 집단 서식하는 모습이 발견되고 있다.

붉은 부리에 주황과 노랑, 녹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날개를 지닌 원앙은 댐 옹벽 틈새마다 몸을 숨기고 휴식을 취하다가 떼를 지어 물 위로 솟아오르며 장관을 연출한다. 안동호에 매년 백여 마리 정도 찾아오던 원앙이 1500여 마리나 발견된 건 지난해부터다. 물가 나무 둥지에 알을 낳고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원앙의 습성과 안동호의 환경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댐과 함께 조성된 옹벽이 삵과 고양이 등 천적으로부터 원앙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원앙을 잘 관찰할 수 있는 탐조대를 만들어 안동댐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박재충 수자원공사 안동권지사 물순환 사업부장은 "원앙이 안전하게 먹이 활동을 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새롭게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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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딱새. 14 오색딱다구리. 15 누루귀. 16 나비꽃. 17 용담꽃. 18 금낭화.

안동호 어류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고점은 배스와 쏘가리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이 차지하고 있다. 먹잇감인 배스, 쏘가리가 증가하면서 안동호는 '수달 천국'이 된 것이다. 아직 학계·환경단체의 공식적인 조사는 없었지만 어민들에 따르면 그물을 찢어놓거나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먹어치우는 수달의 횡포가 자주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 안동호에는 민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민물 가마우지, 제비갈매기, 독수리 등 희귀 조류들도 계절마다 찾아들어 자연스런 생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2013년 학계에 용역을 의뢰해 안동호 주변 생태환경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안동호에는 다양한 생물군이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서곤충, 무척추동물 등 저서동물(底棲動物)은 98종이다. 메뚜기, 딱정벌레, 돼지풀잎벌레 등 육상곤충은 262종, 끄리·피라미·붕어 등 어류는 42종이다. 특히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백조어도 서식하고 있다. 양서류와 파충류는 18종이었으며 오소리, 노루, 삵, 너구리, 멧토끼, 청설모, 날다람쥐 등 21종의 포유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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