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먹고 소화 안 되는 현금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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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6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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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기 경제부 기자

"어떻게 쓸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빠 회사 때문에 못 받는 거야?"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중순 소득 하위 70%까지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기재부의 한 간부는 가족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소득 상위 3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기재부로 전화를 걸어 "왜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하느냐"며 항의하는 일도 이어졌다. 이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대로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게 됐다.

재난지원금은 큰 화젯거리가 됐다. 평소 뉴스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20~30대들 사이에서도 '재난지원금을 실수로 기부하지 않으려면 신청할 때 이걸 주의해야 한다' '재난지원금은 어디에서 쓸 수 있고 어디서는 못 쓴다' 등의 내용을 담은 기사가 많이 공유됐다. 특히 아이가 없는 20~30대 맞벌이 부부들은 소득 하위 70%에게만 줄 경우 재난지원금을 받기가 어려웠다. '나도 세금 많이 내는데'라면서 억울해하던 이들은 지급 범위가 전 국민으로 확대되자 재난지원금을 어디에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동네 편의점에는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는 종이를 붙여 놓은 곳이 많다. '우리 가게에서 재난지원금을 쓰라'는 문자메시지·전단 광고가 이어지고, '재난지원금을 쓰면 10% 할인을 해주겠다'고 나선 곳도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입장에서도 코로나로 위축됐던 소비가 재난지원금 지급을 계기로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일 것이다.

재난지원금이 취약 계층을 보호할 수 있다면, 소비를 진작해 자영업자들이 다시 웃을 수 있다면 정부 재정을 쓰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만 "뭔가 준다니 좋다"는 식으로 현금 복지의 달콤함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고,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까지도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은 마음에 "우리도 좀 받아보자"라고 생각하게 됐다.

일부 복지 전문가는 "다음 대선에는 '기업과 부자'에게만 세금을 물려 현금성 복지를 늘리자는 달콤한 공약이 쏟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2018년 기준으로 이미 소득 상위 30%인 근로자가 전체 근로소득세 중 94.9%를 부담했다. 대표적인 '부유세'인 종합부동산세도 지난해 2조6713억원 걷혔는데, 세율을 아무리 올려도 이번에 재난지원금을 한 번 지급하는 데 들어가는 돈(14조3000억원)에 크게 못 미칠 것이다. 기업 부진 속에 작년에는 법인세도 예상보다 7조원이나 덜 걷혔다. 부자와 기업만 부담을 지는 '복지 확대'는 사실상 허구다.

결국 지금처럼 국채를 계속 찍어 현금 복지의 비용 부담을 자식·손주 세대에게 미루거나, 중산층을 포함해 국민 전체적으로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이미 주어진 재난지원금은 기분 좋게 써서 힘든 자영업자를 도와주자. 다만 '이게 공짜는 아니다'라는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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