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때 결론낸 '칼機 재조사'도 못믿겠다는 與
[177석 가진 거대 여당 '과거사 헤집기']
설훈 "2007년 재조사때 전두환 파워 작용" 부실조사 가능성 언급
박범계, 진보성향 대법관이 유죄 확정한 한명숙 사건에 "재조사를"
법조계·야당 "여당이 앞뒤 사실관계 확인 않고 궤변만 늘어놓아"
by 조선일보 박상기 기자입력 2020.05.26 03:25 여권(與圈)이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과거사'를 잇따라 부각하고 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수차례 진상 조사를 벌였거나 이미 법원 판결이 확정된 사안을 문제 삼고 있다. 여권이 대선 승리 후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겨냥해 1차 적폐 청산을 한 데 이어 이번에는 총선 177석 승리를 기반으로 2차 적폐 청산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25일 1987년 벌어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항공 858기는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를 떠나 방콕을 경유,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안다만해 상공에서 폭파됐고 북한 공작원 김현희 등의 테러로 드러났다. 하지만 일각에선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가안전기획부가 벌인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에 2007년 노무현 정부는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등을 통해 재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사건 실체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MBC가 미얀마 인근 해저에서 "858기 추정 비행기 동체가 발견됐다"고 보도하면서 또다시 '폭파된 것이 맞느냐' 논란이 일고 있다.
설훈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 때 재조사가 '부실 조사'였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설 최고위원은 "당시만 해도 여러 가지 과거 정부로부터 영향력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고 본다"며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갖고 있는 여력이 여러 곳에서 작용했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설 최고위원은 "진실위원회에서 (김현희를 불렀지만) 못 만났다"며 "추론인데 전두환 정권이 갖고 있던 파워가 작용되고 있었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2007년은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이 퇴임하고 재판에 넘겨진 지 10년이 훌쩍 넘은 시점이다. 이들의 잔여 세력이 조사를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연일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조작' 가능성도 거론하며 재조사 분위기를 띄웠다. 조작 주장의 근거는 최근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가 공개한 고(故) 한만호씨의 '비망록'이다. 한씨는 비망록에 검찰 강요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허위 진술을 했다고 썼다. 그러나 이 비망록은 이미 한 전 총리 재판에 증거로 제출됐고 그 내용이 허위로 판단돼 한 전 총리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여권 핵심 인사들은 '새로 나타난 증거'로 대하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한씨 비망록이 공개됐고, 저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은 2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제 비망록이) 국민적 관심사가 돼서 공론의 장에 나왔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여서 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재판부에 대해 "그 재판 중 양승태 대법원장으로 대표되는 '사법 농단'이라는 것이 있었다"고도 했다.
법조계와 야당에서는 "민주당이 앞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전 총리 재판의 주심 법관은 법조계에서 대표적인 진보 성향 판사로 분류되는 이상훈 전 대법관이었다. 법원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을 보였던 대법관들도 비망록 등 증거를 종합한 뒤 모두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다고 판결했다"며 "민주당 정치인들이 증거가 나열된 판결문을 제대로 살펴본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씨가 발행한 1억원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 전세금에 쓰인 명확한 증거가 있는데, 민주당에서 이런 증거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했다. 미래통합당 조해진 당선자는 "대법원 판결까지 난 것을 정치적으로 몰아서 뒤집으려는 건 사법체계를 흔드는 위험한 시도"라며 "국민 눈에는 177석 권력의 힘 자랑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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