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GDP 끌어올리기… 이번엔 '좋은 채무론' 들고나왔다

[당정청, 내년까지 적극적인 확장재정 이어가기로]
文대통령 "재정역량 총동원" 이해찬도 "GDP 총량 지켜내야"
전문가들 "작년 정부지출 9.6% 늘었지만 GDP는 1.1%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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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6 03:25 | 수정 2020.05.26 07:10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 확장에 따른 국가 채무 비율 급등과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를 사실상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의 심각한 위기 국면에선 충분한 재정 투입을 통해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여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좀 더 긴 호흡의 재정투자 선순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재정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면서도 "(재정 투입이) 길게 볼 때 오히려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의 악화를 막는 길"이라고 했다. 당·정·청(黨政靑)은 이날 회의에서 올해뿐 아니라 내년까지 적극적인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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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입장하면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오른쪽 첫째) 원내대표 등과 인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전시재정(戰時財政)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국가 채무 총액(분자)을 GDP(분모)로 나눈 값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재정지출을 확대해 국가 채무 총액이 더 늘더라도 이를 통해 GDP를 끌어올리면 국가 채무 비율을 적당히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가 채무가 GDP 성장으로 충분히 이어질 것이란 이른바 '좋은 국가 채무론'이다. 청와대·여당은 '적자 재정'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최근 '좋은 채무론'을 띄우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가 채무의 총량'보다는 '국내총생산(GDP) 총량'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앞서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도 최근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성장률을 지탱하는 것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재정 확대로 경제의 추가 하락을 막고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것"이라며 "세입 기반을 확충하고 재정 건전성 회복을 도모해 선순환 기반을 구축한다는 큰 방향에 당·정·청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다만 "중장기적으론 재정 건전성 관리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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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정부 재정지출이 늘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맞는 얘기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선 재정지출을 크게 늘려도 성장률은 바닥을 기고 있다는 게 문제다. 가령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전년 대비 10.6%(본예산 기준) 넘는 수퍼 예산을 편성했다. 다음 해 국내총생산은 9.7%나 증가해 과감한 재정지출 덕을 봤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7년에도 성장률(5.5%)이 정부의 지출 증가율(3.7%)을 웃돌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첫 예산을 편성한 2018년엔 정부 지출이 전년 대비 7.1%나 늘어난 반면, GDP는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19년엔 지출이 9.6% 늘어났지만 GDP는 1.1%만 늘었다. 정부 지출이 느는 만큼 GDP는 늘지 않으니 국가 채무 비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들어 재정의 '가성비'가 확 떨어진 것은 잠재성장률 하락, 저물가 등에도 원인이 있지만, 정부가 돈을 제대로 못 쓰는 데도 큰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정부 지출이 GDP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재정 승수'라고 하는데, 재정 승수는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물품 구매 등 투자·소비성 지출이 상대적으로 높고, 국민에게 현금을 직접 살포하는 이전 지출이 가장 낮다. 일반적인 재정지출은 재정 승수가 0.4~0.5로, 국가가 재정을 1조원 늘리면 GDP가 4000억~5000억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재난지원금 같은 이전 지출은 승수효과가 0.2~0.3 정도로 낮다. 현 정부 들어 선심성 정책에만 집중하다 보니 자연히 재정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건설 부문이라든지 정부 지출의 효과가 큰 곳에 돈을 쏟아부어야지, 소비 쿠폰 지급 등 재정지출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과 GDP 성장률의 관계를 살펴보니 별 영향이 없었다"면서 "재정으로 GDP를 올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재정으로 GDP를 늘릴 수 있다면, 어느 나라도 경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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