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군의 베트남전 패배의 전철을 밟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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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6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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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수 예비역 육군 중장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역사상 처음 패배하였다. 여러 가지 분석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군 기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상습적인 마약 복용, 하극상에 의한 상관 살해, 허위 전과 보고, 상급 부대와 워싱턴 비위를 맞추기 위한 허위 보고, 각종 사건 사고의 은폐와 축소, PX 물품 부정 유출 등 각종 전쟁범죄와 부정 사건이 자행되었다. 장교와 지휘관들은 무능하고 비겁했으며 부실한 부대 관리로 병사들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최근 군 기강 사고는 정상적인 병영 분위기에서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우려스러운 면들이 있다. 상급자 야전삽 폭행, 부사관의 장교 성추행, n번방에 현역 병사 가담, 국가 재난 상황에서 음주 및 추태 등 개인의 일탈로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진다. 아군 GP를 겨냥한 북한군 총격에 대한 대응 조치는 어떠했는가. 상시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총기 고장 및 방치, 현장 지휘자의 즉각 대응 실종, 합참의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과 부정직한 대응 등 국민이 군의 대비를 걱정해도 크게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손자는 전쟁에 대비하고 유사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하(上下)가 같은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기본이라 하였다. 국가 전략적 관점에서는 싸워야 할 적이 같아야 하며 군과 국민 모두를 한마음으로 통합해야 한다. 전술적 관점에서는 언제 있을지 모를 적의 침략에 대비해 평시부터 치열하게 훈련하고 장병들을 내 몸 돌보듯 관리해야 한다. 작금의 우리 상황은 어떠한가. 남북한 군사 합의로 서해는 평화의 바다가 되었으며, 핵 탄두 미사일과 우리 영토를 위협하는 초대형 미사일과 방사포는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니고 훈련용이라고 남 얘기하듯 하는 지도자들의 발언으로 군은 갈 곳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조직의 성공과 실패는 리더십에 전적으로 달렸다. 특히 국가와 군과 같은 조직 질서가 엄격하고 역할이 명확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조직 특성을 인정하고 맡은 바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 독립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과거 군의 정치 관여를 막는다는 이유로 정치가 군을 간섭하고 민간 시민 단체가 군의 인권을 감시한다는 이유로 참견하며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가 지휘관의 지휘 행동을 사사건건 방해한다면 군이 제 방향으로 가겠는가.

평생을 나라와 군에 헌신했던 한 사람으로서 제언한다. 군 지휘관은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직 헌신과 희생으로 국민의 뜻에 보답하자. 국민은 강한 군대를 만들라고 군 지휘관들에게 요구하자. 군의 기강은 야전 부대 경시 풍조, 고급 지휘관의 지나친 정무적 판단에 의한 눈치 보기, 인권 단체의 군 폄훼, 국민의 군 경시 풍조 등으로 보이지 않게 무너진다. 전쟁은 첨단 무기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군 기강이 군을 강하게도 하고 약하게도 하는 것이다.

베트남전의 패배 원인을 솔직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세운 결과 미군은 세계 최강으로 거듭났다. 우리 군도 국민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 이제 정치권도 군을 놓아줘야 한다. 어떤 정권이 들어오든 군은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우라고 주문하자. 군은 국민의 눈이 무서운 줄 알고 소신껏 군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길만이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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