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까지 변화시키는 만성통증 적절한 치료로 뿌리 뽑을 수 있어

[통증박사 안강의 無痛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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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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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픈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허리 주변만 들여다보다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 현재 대부분 병원은 일반적으로 허리 통증 환자가 있으면 허리 부근에만 자기공명 영상(MRI)을 찍는다. 이런 접근 방식으로는 안타깝게도 통증을 깨끗이 없애기 어렵다. 허리 통증을 일으키는 문제 자체는 이미 사라졌음에도, 장기적인 통증이 뇌를 변화시키는 바람에 환자는 '나는 아프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10~20년이 지나면 허리 통증 환자가 내원하면 허리와 뇌의 MRI를 같이 찍는 것이 의료계에 보편화될 것이다.

나의 아랍에미리트 환자인 칼리드는 의리를 중시하는 '남자 중의 남자'다. 그는 극심한 목 통증으로 현지 의료진에게 수술 권유를 받았는데, 친구 소개로 나를 찾아와 비(非)수술 치료를 받고 나았다. 그는 완치된 후 그의 아버지, 삼촌 등 가족뿐 아니라 터키에 사는 친구 아들까지 내게 치료를 받게 했다. 그의 아버지, 삼촌, 친구 아들의 병명은 똑같은 척추관협착증이었지만 주원인은 서로 달랐다.

고령인 칼리드 아버지는 오래 걸으면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다고 했다. MRI 사진을 보니 협착증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통증이 오래되면서 발생한 뇌와 신경의 변화가 더 문제라고 나는 판단했다. 칼리드 아버지는 내게 비수술 치료를 받고 증상이 호전됐다. 최근에는 이처럼 만성통증을 오래 앓은 환자에게서 뇌의 특정 부위가 얇아지는 이상을 발견하는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이 경우 척추 자체가 원인이 아니므로 수술 시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확률이 크다. 수술을 통해 고정 쇠로 척추 움직임을 줄이면 얼마간은 덜 아프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증상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칼리드의 터키 친구 아들은 척추 전방전위증과 심각한 추간판(디스크)탈출증 진단을 받고 2년간 고생하다가 척추 고정 수술을 앞뒀다. 서른도 안 된 아들이 대수술을 받는다는 말에 아버지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칼리드는 친구 아들에게 "내가 모든 병원비와 숙박비를 지불할 테니 즉시 한국 안강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게 연락해 친구 아들의 치료를 부탁했다.

이분을 처음 진단하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치료 도중 심각한 마비가 진행되면 그 즉시 수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디스크 탈출 증상이 더 심해지거나 혈액 순환이 막히는 등 이상이 생겨 갑자기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어 설명했다. "이 통증이 몇 개월 전에 생긴 것이라면 몇 가지 치료만으로 통증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1년 넘은 통증이므로 칼리드 아버지처럼 뇌나 척추 신경의 특정 부위에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변화가 계속되면 디스크 탈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통증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척추 손상이 오래 진행됐기 때문에 척추관에 피를 공급하는 기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도 했다. 아픈 부위는 같지만, 그 기전은 전혀 다르며 어느 문제가 중한지에 따라 치료 방향도 달라진다는 것을 인지하도록 했다. 심한 비만이던 그는 이후 내게 비수술 치료를 받으면서 빠른 걷기와 식이요법을 병행했고 3개월 후 터키로 돌아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이처럼 진료를 하다 보면 척추관협착증을 앓는 만성통증 환자 대부분에게서 복합적 원인이나 증상이 발견된다. 허리가 아플 때 척추 신경이 눌리는 것만이 문제라면 수술이 좋은 치료법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술은 장기적으로 손해가 될 수도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만성통증은 치료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학자가 많았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와 운동을 한다면 만성통증에 의해 얇아졌던 뇌의 특정 부위가 다시 두꺼워진다. 뇌 특정 부분이 얇아진다는 것은 뇌신경을 보호하고 활동하게 돕는 주위 세포들이 손상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포들은 우리 노력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척추 신경 역시 웬만한 어려움을 이기고 회복할 수 있는 강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 척추에 혈류 장애가 생긴 경우라도 신경 기능이 회복되면 어느 정도 혈류량도 증가한다. 만성통증은 호전될 여지가 있으며 완치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는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통증도 그에 못지않게 집중 관리해야 한다. 아플 때마다 주사 한 방에 위기를 넘기면서 버티겠다고 생각하다간 일을 키울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고혈압이나 당뇨보다 빨리 신체 노화를 유발하기도 한다.

만성통증은 가능하면 고쳐야 한다. 만일 완치될 수 없더라도, 집중적이고 엄격한 관리를 하면 훨씬 나아질 수 있다. 단, 퇴화를 부추기는 치료는 안 된다. 과도한 약물이나 절제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얇아진 뇌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좋은 방법은 '빠르게 걷기'다.

금요일, 유튜브 '의대녀'서 두통 원인 알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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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이진희 아나운서와 함께하는 의료 정보 유튜브 채널 '의사와 대화하는 여자(의대녀)'에서는 오는 6월 5일까지 매주 금요일 만성통증 전문의 안강 원장과 다양한 두통 원인을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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