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카드’ 다시 흔든 김정은…北 다음 행보는?
북한이 올 들어 첫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었습니다. 북한 매체들이 어제(24일) 일제히 보도했는데, 구체적인 개최 일시나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북한에서 군사 및 국방 관련 사업 전반을 지도하고 당적으로 통제하는 기관으로, 지난해에도 9월과 12월 각각 한 차례씩 열렸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이번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핵전쟁 억제력 강화"를 언급한 대목입니다.
■ '핵전쟁 억제력' 표현 재등장...정부, "지난해 언급 재확인"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24일 보도 내용을 보면 "확대회의에서는 당의 혁명적 군사 로선(노선)과 방침들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부문별 과업들이 다시 한 번 강조되였다. 확대회의에서는 국가 무력 건설과 발전의 총적 요구에 따라 나라의 핵전쟁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이 제시되였다."고 돼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ICBM 실험과 같은 고강도 도발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됐는데요.
정부는 이 언급에 대해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 당시 언급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통일부 조혜실 부대변인은 25일 정례브리핑에서 "핵전쟁 억제력이라는 표현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당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핵전쟁 억제력을 언급한 바 있으며, (이번)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이를 재확인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이 표현은 2017년 11월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이듬해부터 진행된 화해 국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표현입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교착이 장기화되면서 다시 등장했는데요. 지난해 12월에 북한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중대 시험'을 한 뒤 국방과학원 대변인 명의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는데 적용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지난해 말 나흘간 개최했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보도에도 비슷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핵 위협을 제압하고 우리의 장기적인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강력한 핵 억제력의 경상적 동원태세를 항시적으로 믿음직하게 유지할 것이며, 우리의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차후) 대조선립장(대북입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는 데 대하여 언급했다"는 내용입니다.
■ "전략무력 고도 격동상태 운영"...고강도 도발 예고?
또 하나 주목을 끈 것은 "전략 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이 제시되었다"는 부분입니다. 전략무력(전략무기)는 '전쟁의 판세를 바꿀 정도의 위력적인 무기'라는 뜻으로 통상 핵무기나 그 대표적 투발수단인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전략핵폭격기 등을 의미합니다. 또한 '격동상태'는 우리 말로는 '격발상태'와 비슷한 뜻으로,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올해 1월 1일 보도된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과에서도 북한은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세상은 멀지 않아 공화국(북한)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 모두 장기 교착국면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분명 우려할만한 점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 같은 언급이 당장 고강도 도발이나 ICBM급 전략무기 개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ICBM이나 SLBM과 같은 전략무기를 새롭게 개발하거나 실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며 "새로운 개발이나 실험보다는 기존 전략무기의 운영과 관련한 방침들이 설정됐다는 의미가 강해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통상 전략무기라고 하는 개념이 있지만, 이는 굉장히 넓은 범위로 정의될 수 있다"며 "북한이 말하는 전략무기는 군사 전략상 상대의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무기로써 북한이 최근 개발한 신종 단거리 무기들도 전략적 무기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와 올해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과 '북한판 에이태킴스’로 불리는 신형 전술지대지미사일,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 신형 초대형 방사포 등을 잇따라 시험 발사했는데, 이들 4종의 신형 단거리 무기들의 실전배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핵 카드' 다시 흔든 김정은...대미 압박 효과 노린 듯
그럼에도 북한이 다시 '핵전쟁 억제력'과 '전략무력(무기)'를 언급한 것은 다중의 포석이 있어 보입니다. 우선 당장은 아니더라도 핵·미사일 등의 개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일부 노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한 장기간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로 다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 안보를 강조하며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궁금한 것은 북한의 다음 행보입니다. 당장 ICBM과 같은 고강도 도발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끊임없이 '자위적 국방력'을 강조하며 계획된 무기 개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우선 신형 미사일 4종의 실전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이를 운용할 부대 조직도 정비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단거리 미사일 이상으로 강도를 높이는 군사적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있는데, 지난해 한차례 시험 발사한 SLBM인 '북극성 3형'의 추가 시험발사를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사일과 잠수함이 결합한 형태의 발사 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ICBM의 경우 발사는 하지 않고 고체형 엔진의 성능 실험을 하거나 엔진의 모습을 공개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도 충분히 압박 카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 문제연구소 교수도 "북한은 이미 지난해 신형 SLBM 시험발사를 한차례 공개했다"며 "당시 개발의 중간 단계로 평가하는 바지선에서 발사하는 실험을 했기 때문에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추가 실험을 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군 당국은 북한이 건조 중인 3천t급 잠수함의 진수 시기 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공개한 '북극성-3형' 3발을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다음 군사 행보와 관련해 고강도 도발로 미국을 직접 자극하기보다는 완성된 SLBM 발사 체계를 갖춘 3천t급 잠수함을 먼저 공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SLBM 3발을 탑재한 신형 잠수함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에 상당한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잠수함 공개만으로는 유엔 대북제재에도 저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난주 "5.24 조치는 사실상 실효가 상실됐다"고 공식화하며 북한에 대해 교류 협력 의지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북한은 그에 대한 화답 대신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내세우며 무기 개발 행보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올해, 남북간 교류와 협력이 재개될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대결 구도가 심화될지, 북한의 다음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