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언론→지상파→여권… 한명숙 유죄 뒤집기 '작전 냄새'
KBS·MBC·YTN 등 시사 프로, 여당·추미애 발언 나오기 전부터
뉴스타파 기자 직접 출연시켜 "한명숙 판결 잘못됐다" 주장
by 조선일보 손호영 기자입력 2020.05.26 01:30 | 수정 2020.05.26 10:51 여권(與圈)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년간 복역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유죄 판결 뒤집기'에 나선 가운데, KBS·MBC 등 지상파방송과 YTN이 이보다 앞서 여론을 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가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을 건넨 고(故) 한만호씨의 이른바 '비망록' 내용을 보도하자, 방송들이 앞다퉈 이 매체 기자들을 자사 시사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에 초대해 분위기를 띄웠다.
'비망록'은 5년 전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채택돼 이미 검증됐지만, 방송사들은 '10년 만에 드러난 비망록'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라며 뉴스타파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일주일 뒤인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강압 수사' '검찰 개혁' 등을 언급하며 한 전 총리 판결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명숙 무죄'를 처음 언급한 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다. 지난 4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 집중'에 출연한 유 이사장은 "한 전 총리는 아무 물적 증거가 없었는데 진술 하나로 유죄가 났다"고 했다. 나흘 뒤엔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서도 허위 진술 의혹이 있다.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14일 뉴스타파가 "한만호 비망록을 단독 입수했다"고 보도하자, 같은 날 지상파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합세했다. MBC는 이날 "뉴스타파에서 비망록을 전해 받아 MBC가 공동취재했다"며 '433·332·333 외워서 진술… 검찰의 강아지였다' '빼앗긴 비망록… 10년 만에 드러난 1200쪽' 등 리포트를 두 꼭지에 걸쳐 내보냈다. 뉴스타파는 올해 2월까지 MBC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았던 최승호씨가 퇴임 직후 복귀한 매체다.
KBS는 14일 비망록을 보도한 뉴스타파 기자를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 '더라이브'에 초대해 '한명숙 뇌물 사건의 사라진 증인, 빼앗긴 비망록'을 주제로 방송했다. "한만호가 남긴 1200쪽, 그 속에서 드러난 검찰의 추악한 얼굴" "해소되지 않은 의혹을 추적한다"며 한씨 주장을 상세히 다뤘다.
일주일 뒤 여권이 일제히 '한 전 총리 재조사'를 주장하자, KBS 뉴스9은 이틀에 걸쳐 2011년 이뤄진 한만호씨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비망록'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으로, KBS는 이날 방송에서 "당시엔 인터뷰 내용이 새롭지 않아 보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터뷰 내용을 보도한 KBS 기자는 "9년 전과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KBS 뉴스9은 25일에도 한 전 총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동료 수감자가 검찰과 짜고 허위 증언을 했다는 뉴스타파 보도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뉴스9은 "이런 주장을 한 교도소 수감자를 뉴스타파가 인터뷰했는데, KBS가 관련 내용을 제공받아 검토했다"고 했다. YTN '뉴스가 있는 저녁'과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서도 "윤석열 총장과 검찰 특수부 라인들이 연관됐던 사건" "공수처 설치 목적에 맞는 가장 적합한 사건" 같은 주장이 전파를 탔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공영방송은 서로 다른 의견을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소개하고 선택은 시청자에게 맡겨야 하는데, KBS와 MBC는 정권에 '충성 경쟁'을 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인터넷 언론사와 '공동 취재'를 한다는 것도 스스로 신뢰도를 낮추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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