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콜센터 꿈꾸는 ‘포항 1588’
by 포항 | 글·사진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K리그에서 인정받는 ‘일류첸코·오닐·팔로세비치·팔라시오스’
“경기 치를수록 강해져…남은 24경기에선 승점 3점씩 배달할 것”
‘1588’은 콜센터를 상징하는 숫자다.
대리운전부터 밤낮 구분 없는 신고와 민원까지 모두 이 숫자로 통한다. 올해는 프로축구 K리그에 ‘1588’이 뜨고 있다.
포항 전력의 뼈대가 되는 외국인 선수 4명의 이름 앞글자를 딴 애칭 ‘1588(일류첸코·오닐·팔로세비치·팔라시오스)’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경향신문과 만난 선수들은 “우리는 승점 3점을 안방으로 배달하는 승리의 콜센터”라고 활짝 웃었다.
1588은 포항 홈구장인 스틸야드 개장 30주년 다큐멘터리 3부작 <서른, 그리고 스틸야드>를 계기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네 선수가 1588이라는 팻말들을 들고 촬영에 나선 것이 팬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숱한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도 이처럼 특별한 애칭을 얻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닐은 “1588이 콜센터 번호인 줄은 몰랐지만 팬들이 기쁘다면 1588이라는 애칭이 좋다”고 활짝 웃었다.
승리의 콜센터를 꿈꾸는 이들의 기량은 K리그에서 인정받고 있다. 지난여름 포항에 입단한 골잡이 일류첸코와 플레이메이커 팔로세비치가 나란히 2골씩을 터뜨렸고, 미드필더 오닐과 측면 날개 팔라시오스도 제 몫을 톡톡히 하면서 포항은 중위권인 6위를 달리고 있다. 김기동 포항 감독은 “외국인 선수들의 이름값에선 우리가 밀릴지 몰라도 실력은 그렇지 않다”며 “1588이 시즌 초반부터 잘해주면서 큰 힘을 받고 있다”고 칭찬할 정도다.
팬들이 만들어준 애칭이 네 선수를 하나로 묶는 매개체가 됐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외국인 선수들의 성공을 위해서는 리그 적응이 큰 지분을 차지하는데 러시아(일류첸코)와 호주(오닐), 세르비아(팔로세비치), 콜롬비아(팔라시오스)에서 날아온 이들이 서로를 보듬고 있다. 일류첸코는 “코로나19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훈련이 끝나면 가족까지 함께 만나 식사도 하는 친구 사이”라고 말했고, 오닐은 “일류첸코와 팔로세비치가 없었다면 포항에도, 한국 축구에도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1588이 승리의 번호로 완성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게 사실이다.
중원 살림꾼인 오닐은 날씨가 정반대인 호주 출신이라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고, 팔라시오스는 다소 투박한 플레이를 다른 선수들과 맞춰가는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지난 22일 FC서울과의 K리그1 3라운드에선 1588 전원이 처음 선발로 나섰지만 1-2로 역전패하기도 했다.
포항의 시즌 첫 패배. 전반을 마치고 교체됐던 팔라시오스는 승리의 콜센터가 완성되는 마지막 퍼즐이 자신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팔라시오스는 “나만 더 잘하면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그걸 이겨내는 게 프로 선수”라며 “경기를 치를수록 우리는 강해질 것이다. 남은 24경기에선 패배가 아닌 승리를 팬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