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층 들어서면 일조량 6시간 →15분 “답답해 못 살아”
by 글·사진 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인천 솔빛마을 주민들 가처분 신청에 법원 ‘공사중지’ 명령
송림초 주변 환경개선 사업
도시공사, 설명회 없이 착공
“일조권 침해” 주민 손 들어줘
조만간 일부 공사 중단될 듯
25일 인천 동구 솔빛마을주공 1단지. 이 아파트 단지는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살던 수도국산을 개발한 자리에 들어섰다. 2003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8∼25층으로, 단지 주변은 인천의 대표적 원도심이다. 지난해 1월부터 이 아파트 바로 옆에는 ‘송림초 주변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5m가 넘는 철판 가림막 안에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곳곳에는 대형 타워크레인이 건축 자재를 나르고 있다. 인근 송림초등학교 입구 쪽 왕복 3차선의 비좁은 도로는 레미콘 차량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겉으론 여느 아파트 공사현장과 다름없다.
그러나 이 아파트 중 일부는 조만간 공사가 중단된다. 솔빛마을 주민 185명이 지난해 9월 이 아파트가 예정대로 지어지면 일조권을 침해한다며 법원에 공사금지 가처분을 냈고, 지난달 22일 법원은 4개동 220가구에 대해 공사중지를 명령했다.
인천도시공사는 ‘송림초 주변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7만3629㎡에 2562가구의 ‘송림파크푸르지오 아파트’를 짓고 있다. 12개동으로 최고층은 48층이다. 25일 현재 공정률 11%인 이 아파트가 완공되면 솔빛마을 아파트 일부 동의 일조시간은 하루 평균 348분(동지 기준)에서 15분으로 급감한다. 솔빛마을 김모씨(44)는 “아파트 바로 앞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조망권은커녕 대낮에도 햇빛을 볼 수 없어 얼마나 답답하겠나”라고 말했다. 조희종 솔빛마을 주민대책위원장은 “인천도시공사는 일조권 침해를 주장하는 주민들에게 한번도 설명회를 연 적이 없다”며 “우리는 손해배상이 아닌 당초 요구했던 640가구에 대한 공사금지를 원한다”고 말했다.
법원은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공익적 목적이 있더라도 사회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정도의 일조권 침해가 인정된다며 솔빛마을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솔빛마을뿐 아니라 아파트 공사현장 맞은편 2∼3층에 사는 저층 주민들도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송림파크푸르지오 아파트의 용도지역 변경에 문제가 없는지와 전략적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해 조사를 촉구했다. 당초 이 아파트는 용적률 239%로 1384가구를 건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6년 ‘뉴스테이(민간 기업형 임대주택)’가 도입되면서 규제가 완화되고, 일조권을 따지지 않는 준주거지로 바뀌면서 용적률 354%에 2562가구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배다리에서 이 아파트로의 진입도로는 3차로로 비좁아 2022년 5월 입주가 시작되면 교통대란이 우려된다.
남용근 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은 “2년 뒤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아파트 담벼락만 보고 생활할 판”이라며 “인천도시공사는 원도심의 좁은 공간에 빼곡히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 개발이익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기반시설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도시공사는 본안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아파트 220가구를 못 지으면 149억원의 손실이 추정되는 만큼 손배 협상에 나서고, 결렬되면 일조권 피해 아파트를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