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 다가오는 선택의 순간…한국 ‘줄타기 외교’로는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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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 경제블록’ 발등의 불…홍콩·대만 문제도 고민거리
전문가들 “단기적 문제 회피보다 분명한 외교 원칙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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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격돌은 한국에도 중대한 외교적 딜레마를 던지고 있다. 미·중 장기 패권 경쟁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고조되면서 경제·기술·정치·안보 분야를 망라해 한국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전처럼 ‘전략적 모호성’에 기대기보다는 분명한 외교 원칙에 근거한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발등에 불은 미국이 참여를 제안한 ‘반중 경제블록’ 경제번영네트워크(EPN)다. 정부는 “EPN은 아직 검토 단계의 구상”이라고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구상이 가시화하면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에도 직접적인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4일 미 상무부의 ‘화웨이 제재’ 조치 이후 첨단기술 분야 경쟁도 기업들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한 미국이 어느 시점에서든 아시아 지역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강행할 경우 ‘제2의 사드 보복’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 한·미는 아직까지 중거리미사일 배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은 미사일 배치 시 ‘반격’을 시사하는 등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미·중의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홍콩이나 대만, 신장위구르자치구 문제도 고민거리다. 미국이 최근 대중 의제로 주목하는 홍콩보안법 반대,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참여 문제에서 한국 등 동맹국들에 ‘줄 세우기’를 시도할 수 있어서다. 중국 역시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홍콩, 신장위구르는 내정이라고 여긴다”고 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등 외부의 시선에 민감하다. 특히 정부가 연내 방한을 추진 중인 시 주석이 ‘사드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비롯해 민감한 이슈를 제기하며 한국의 ‘양보’나 ‘동의’를 얻어내려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무기로 미·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 왔지만 이제는 대응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문제를 우회하거나 위험을 ‘헤징’(회피)하는 식으로는 양측 모두로부터 신뢰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사안별로 정체성과 국익, 국민 합의에 기반한 외교 원칙을 선제적으로 만들고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각각 연계하는 등 미·중 모두와 ‘확대 협력’을 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남중국해나 5G 기술 등 미·중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서 한국의 위치가 애매해질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미·중 갈등 논의를 위해 관계부처와 민간이 참여하는 외교전략조정회의를 출범했고, 외교부 내에 한시적 전담 조직도 설치했다. 그러나 정부 각 부처가 미·중 갈등의 복합적 성격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할 만한 역량을 갖췄는지에 대해선 의문도 제기된다. 한 고위 당국자는 “한국이 외교 원칙을 수립해 대응한다면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평면적으로 선택하는 구도가 아니라 3차원의 외교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