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처방은 ‘적법’…통화만 하면 ‘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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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진찰 없이 처방 사건…대법, 6년 만에 유죄 판단
“통화로 처방 이뤄지려면 이전에 환자 상태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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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전화 통화 등을 통해서도 진찰하고 처방전을 내줄 수는 있지만, 최소한 그 전에 대면 진찰해 환자 상황을 상세히 알고 있어야 적법하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25일 밝혔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의원을 운영하던 의사 ㄱ씨는 2011년 지인 부탁을 받고 ㄴ씨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전문의약품 처방전을 작성해준 혐의로 기소됐다. 의료법 17조는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처방전 등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1심은 유죄로 보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2013년 대법원은 전화 통화로 환자를 진찰하고 약을 처방한 다른 의사 사건에서 원심의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당시 대법원은 “ ‘직접 진찰한 의사’라는 의료법 조항은 스스로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게 아니다”라며 “따라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전화 진찰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사건은 대면 진찰을 한 환자들에게 이후 전화 통화로 처방해준 게 문제가 된 경우였다.

2심은 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ㄱ씨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ㄱ씨가 ㄴ씨를 대면해 진찰하지는 않았지만 전화 통화로 건강상태와 증상 등 처방전 발급에 필요한 여러 사항을 상세히 확인하는 등 이른바 ‘전화 진찰’을 한 다음 처방전을 발급했기 때문에 무죄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이 상고심에 올라온 지 6년여 만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2013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인정하면서도 “신뢰할 만한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특정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행위가 있어야 ‘진찰’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러한 행위가 전화 통화만으로 이뤄지는 경우에는 최소한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 등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ㄱ씨는 전화 통화 이전에 ㄴ씨를 대면해 진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전화 통화 당시 ㄴ씨 특성을 알고 있지도 않았다”며 “ㄱ씨 행위는 신뢰할 만한 ㄴ씨 상태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