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도시에서 꺾인 코로나19...이젠 농촌 지역이 '새 진원지'
by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68만명을 넘었다. 누적 사망자는 10만명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봉쇄를 풀고 있다. 22일(현지시간)에는 주말의 종교집회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다음날인 23일과 24일에는 코로나19 발발 이후 끊었던 골프를 이틀 연속으로 즐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봉쇄 해제 페달을 밟는 데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하루 빨리 경제를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정치적 계산뿐만 아니라 뉴욕 등 도시 지역에서 감염 확산세가 현저히 꺾였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미국 최대의 코로나19 진원지로 꼽힌 뉴욕주는 지난달 17일 1만1000명에 달했던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23일에는 1500여명으로 떨어졌다. 한때 1000명이 넘었던 일일 신규 사망자도 100명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17%(6000만명), 영토의 97%를 차지하는 농촌 지역에서는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에 따르면, 지난 4월1일 인구 10만명 이상인 미국 내 모든 카운티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있었던 반면 인구 9000명 이하 카운티의 경우에는 네 곳 중 한 곳에만 확진자가 있었다. 그러나 한 달 사이에 농촌 지역의 10만명당 확진자는 8배 늘었다. 워싱턴포스트는 24일 “대도시를 덮쳤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미국의 농촌 지역을 최전선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지역들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농촌 지역은 도시에 비해 건강 상태가 나쁘고 고령인 반면 의료설비가 허약하다. 병원에 중환자실이 없는 카운티에 사는 인구가 1800만명이고, 그 중 4분의 1 이상은 60세 이상이다. 네브라스카주의 경우 중환자실이 하나도 없는 카운티가 81개에 이른다. 이런 곳은 의료 인력도 부족해 의료진의 일부만 감염돼도 병원 전체가 마비된다. 금융위기 여파로 병원들이 문을 닫아 병원까지 수백킬로미터를 가야 하는 지역도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농촌 지역 병원 130개가 문을 닫았다. 코로나19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들과 주류 언론이 만들어낸 거짓이라고 믿는 이들도 많은 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0만명당 확진자가 가장 많은 25개 농촌 지역 카운티 중 20개는 고기가공 공장 또는 교도소가 있는 곳이라고 분석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고서에 따르면 19개주의 115개 고기가공공장에서 5000명이 감염됐다. 오클라호마주 텍사스 카운티의 한 돼지고기 가공공장 시보드푸드는 지난 24일 전체 직원 2700명 가운데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64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오하이오주 마리온 교도소에서는 수감자의 80%와 교도관 등을 포함한 직원 160여명이 감염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연방정부의 지원은 확진가 규모가 큰 대도시에 집중됐다. 인구가 약 9000명인 인디애나주 디케이터 카운티의 공중보건 조정관 션 더빈은 “충분한 물자를 공급받지 못했다. 형편 없었다”고 말했다. 디케이터 카운티는 보호복 50장, N95 마스크 100장, 보호장갑 한 상자를 받았다. 보호장갑이 담긴 상자는 파손돼 있었다. 이 때문에 디케이터 카운티는 200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때 사용한 뒤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N95 마스크를 창고에서 꺼내 써야 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