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악몽의 10년’ / 박주영
박주영 ㅣ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
“복수의 노조와 사용자 사이의 교섭 절차를 일원화하여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섭 체계를 구축하고 근로조건을 통일하는 데 목적상 정당성이 인정된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가 처음 시작되었던 201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럴듯해 보였지만,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처음 한 일은 노조 파괴였다. 사업장 대표교섭 권한을 획득하지 못하면 교섭권도 쟁의권도 모두 박탈할 수 있는, 이 승자독식의 구조는 눈엣가시 같은 노동조합을 없애는 데 딱 좋은 수단이 되어주었다.
창조컨설팅이라는 복수노조를 악용한 노조 파괴의 괴물이 탄생했다. 현대차의 개입 아래 유성을 시작으로 만도, 발레오만도, 케이이씨(KEC)와 한진중공업, 발전회사들과 대학병원들에 이르기까지 산업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마치 경연을 벌이듯 복수노조를 악용하는 사례가 쏟아졌다. 무노조를 외치던 삼성은 노조가 설립되면 유령노조의 단체협약을 구실로 2년간 단체교섭권을 박탈하고 식물화된 노조를 체계적으로 와해시키는 노조 대응 시나리오를 실행했다.
기업단위의 교섭독식 체계는 산별교섭권도 빼앗았다. 노동조합법의 최대 악법이었던 복수노조 설립금지 조항이 1997년 삭제되었다. 노조법 부칙으로 기업단위 복수노조 설립금지 조항이 계속 유예됐지만, 법원은 복수의 기업별 노조만 금지될 뿐 초기업별 노조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회사가 ‘페이퍼노조’를 만들어놔도 초기업단위 노조의 설립은 허용됐고 교섭이 가능해졌다. 이에 노동조합들은 산별노조 전환을 시작했다. 산별교섭을 통해 산업·업종 전반의 최저노동조건을 설정하고 산업정책과 노동시장 구조의 공정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노사관계의 토대를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산별교섭을 하려 해도 무조건 기업단위 교섭대표권을 강제했다. 10여년간 어렵게 쌓아오던 산별교섭 구조는 힘을 잃었다.
그럼 복수노조가 아닌 곳은 안녕한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하던 중이라도 복수의 노조가 생기면 다시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대표교섭권을 확보해야만 교섭을 할 수 있다. 파업 중에 복수의 노조가 생기면 파업을 중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단일노조 사업장의 쟁의행위란 풍전등화 신세다. 창구단일화 제도는 노동조합을 온순하게 길들이는 채찍이었다.
헌법상 자유로운 노동3권이란 노동하는 사람 누구나 쉽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집단적으로 교섭하고 단체행동을 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교섭 요구 할 수 있는 시기를 알아야 하고, 몇차례의 공고 절차, 공고 기간과 시정 신청 기한, 조합원 수 계산 시점과 산정 방법까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절차는 너무 복잡하다.
정작 창구단일화 절차 공고를 해야 하는 회사는 이를 지연해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헌법상 교섭응낙 의무만 있는 사용자에게 개별교섭과 대표교섭 중 교섭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줬다. 대표교섭권을 갖게 될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선호에 따라 개별교섭 동의를 결정하도록 사실상 부당노동행위를 허용해준 셈이다.
신생노조가 설립되는 족족 친기업 노조이거나, 조합원 수를 부풀려 신생노조의 교섭 자체를 가로막는 노조 파괴 환경에, 수학공식 풀듯 공고 절차를 외워야 하고, 조합원 수를 뺏기지 않기 위해 첩보작전을 해야 하는 이런 제도하에서 과연 누가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할까.
지난 10년간의 사례들은 창구단일화 제도가 명백히 사용자에게 편파적임을 보여줬다. 노동자들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라고 쓰고, 기업단위 교섭강제, 노조의 탈을 쓴 부당노동행위라고 읽는다. 이제라도 제대로 평가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