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세상] 리얼 유토피아 / 이주희
이주희 ㅣ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형용모순인 리얼 유토피아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꿈과 실천 사이의 긴장을 의미한다. 진보적인 제도를 통해 인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학자들의 공동 프로젝트 제목이기도 하다. 20%를 넘나드는 실업률에도 행정 과부하와 예산 부족으로 실업급여조차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미국을 보면 왜 이를 미국의 사회학자가 주도해야 했는지 이해가 된다.
우리 기업가와 경제전문가가 애정하는 미국의 유연한 고용체계는 기업의 금융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다. 단기적 재무제표상의 성과 추구는 기술혁신이나 숙련에 대한 저투자를 유발한다. 가계 저축을 잡아먹는 뮤추얼펀드의 집중적인 투자 혜택을 받아도 국외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대기업은 미국 내 고용을 늘리지도 못한다. 이 과정에서 소득 상위 1%는 지속적으로 부와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낮추려 하고 그로 인해 불평등은 심화되고 재정은 위기 상태이며 공공서비스는 삭감된다. 고용이 유연화된 나라에서 의료보험을 고용과 연결해 실직자들이 일자리와 의료보험을 동시에 잃어버리게 만든 것도 압권이다. 이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을 그들의 안식처로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뛰어난 풍광과 풍부한 자연자원을 가진 멋진 신세계여서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비자발적 실업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이에 대응하는 일차적인 사회안전망일 뿐 아니라 기본적인 수요를 유지해주는 효과적인 경기정책이 될 수 있다. 특히 위장된 자영업자로 노동자성이 분명한 특수고용직에 대해서는 고용보험뿐 아니라 노동3권의 부여 방안까지 논의되어야 한다. 단, 20세기 단일한 고용주와 안정된 일자리를 전제로 디자인된 고용보험은 21세기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역동성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보험제도하에서는 불가피하게 수급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노동인구가 일부라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보편적 적용이 가능한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확대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더 고민하였으면 한다.
이러한 보편적 지원체계를 마련하지 못했을 경우를 상정해보자. 더 간편하게는 미국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도 좋다. 실업자를 도움 없이 방치하면 결국 빈곤이 확산되고 질병과 범죄의 빈도도 증가한다. 빈곤은 불가피하게 공적부조를, 질병은 의료비를, 범죄는 범죄자를 수용하기 위한 엄청난 시설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예산을 아끼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국가적,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실업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실업의 발생 자체를 막는 것이며,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거대한 담론이나 타협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규모의 변화가 쌓여 큰 변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독점으로 인한 폐해가 큰 플랫폼 기업 활동을 대신하여 혁신적인 노동조합이나 생산자 및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들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되는 플랫폼 협동조합을 활성화해 더 평등한 분배와 노동권 보호를 추구할 수 있다. 또한 당장에라도 개별 기업의 노사가 합의해 사내 근로복지기금을 고용유지 대상에서 배제된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의 고용 보호를 위해 지원하거나 생계를 위해 장기 대출해주는 방안도 마련해볼 수 있다.
대면을 피해 편안하게 집에서 물건을 받아 볼 수 있지만 그 때문에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할 수 있는 세상, 아프면 노동자에게 쉬라고 하지만 그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지침인 세상, 최상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노동자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가 가능한 세상에서 우리는 재난기본소득을 시작으로 리얼 유토피아를 향한 어려운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정치는 파편화된 개인의 선호를 사회 전체의 선호로 집약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의 최약자를 어떻게 보호하는가에 따라 국격이 결정된다. 내 나라가 높은 국격을 갖춘 국가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희망만은 아닐 것이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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