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 마지막 총리' 현승종 前 총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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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5 18:06 노태우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낸 현승종(101) 전 한림대 총장이 25일 오전 5시 22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현 전 총리는 1992년 10월 역대 총리 중 최고령인 73세의 나이로 제24대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1992년 8월 충남 연기군수였던 한준수씨가 그해 3월에 열린 14대 총선 관련 노태우 정부의 ‘관권 부정선거’를 폭로해 파문이 커지자 노 대통령은 집권 민자당을 탈당하고 ‘중립 내각’ 구성 등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그해 10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당이 없는 상태에서 ‘현승종 중립 내각’이 꾸려졌다. 당시 노 대통령이 큰 권한을 가져 현 전 총리의 역할이 제한적이었지만, 고인은 특정 정당·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내각을 지향했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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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종 전 국무총리./연합뉴스

1919년 평남 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양공립고등보통학교, 경성제국대학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광복 직후인 1946년부터 1974년까지 고려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다. 이 기간 ‘로마법개론’ ‘로마법 원론’ ‘법사상사’ 등을 집필했다. 당시는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던 때였다. 검소했던 현 전 총리도 교수 신분임에도 양복보다 교복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현 전 총리는 1960년 4·19혁명 당시엔 고려대 학생처장으로서 시위 행렬에 참여해 학생들을 보호했다. 1961년 5·16 이후 고려대 학생들이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자 정부는 학생들을 구속하려 했다. 그러자 현 전 총리는 스크럼을 짠 학생들 앞에 나아가 드러누우며 “정 나가고 싶으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외쳐 학생들의 대량 구속을 막은 일화도 있다. 당시 고려대 법대 학생이었던 김중권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현 전 총리 모습에 숙연해진 우리는 스크럼을 풀고 강의실로 향했다”며 “학생운동에도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현 전 총리는 이후 성균관대 총장,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 한림대 총장 등을 지냈다. 1991년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도 역임했다. 총리직을 마친 뒤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 사법제도발전위원장,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자문 국민원로회의 공동의장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조근정훈장,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1993년부터 건국대 재단 이사장으로도 일했던 현 전 총리는 1999년 언론 인터뷰에서 “일제 말 학도병으로 간 뒤 일본군 소위로 임관해 중국 팔로군과 교전했다”고 처음으로 밝히기도 했다. 당시 그는 “조부(현희봉)와 부친(현기정)이 의병과 독립운동가로 헌신했는데, 나는 일본군 소위와 학도병이었다고 차마 밝힐 수 없었다”고 했다.

현 전 총리 장례는 가족장으로 진행된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7일 7시 15분,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02)3410-6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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