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나라의 나몰라 임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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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가운데)·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위기에 진면모가 드러나는 법일까.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맞서 싸우는 가운데에서도 유독 ‘리더십 리스크’까지 이중고를 겪으며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나라들이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필수불가결한 ‘셧다운(봉쇄)’을 일반 국민들에게 강제하는 와중에도 정작 일부 지도자들은 격리지침을 예사로 어기는 등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는 코로나19 확진자 ‘세계 1위’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행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특히 눈총을 사고 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사항인 포드자동차 공장이나 마스크 공장에서조차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 언론의 뭇매를 맞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연이틀 골프장을 찾아 라운딩을 즐겼다.

미 전역에서 이동제한령이 부분 해제에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재확산과 2차 유행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현충일 연휴 기간인 지난 23~24일 연이어 골프장을 찾은 것이다. “물리적 거리두기를 잊지 말아 달라”고 강조한 데비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조정관의 권고는 무시된 셈이다. ‘대선 경쟁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위터에 “(미국) 대통령직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결정에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는 자리”라며 “준비가 안 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수장이면서도 ‘존재감’이 미약했던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도 지난 20일 플로리다 올랜도의 식당 방문 자리에서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지침을 정면위반했다는 논란에 시달렸다.

감염자 36만여명으로 어느새 세계에서 두번째로 환자가 많이 발생한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르 대통령도 이 방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하루 사망자가 1만명을 넘긴 지난 9일 호수에서 제트스키를 타며 한가로이 물놀이를 즐겼다. 그는 환자 폭증에도 불구하고 격리 완화 조치부터 들고 나오는가 하면, 의학적 논란이 있는 말라리아 치료제 사용을 권장하는 등 자질론에 시달리고 있다. 브라질 하원에 접수된 탄핵요구서만 35건에 이르는 등 민심도 흉흉한 상태다.

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하루 1만명 안팎의 환자가 발생하는 폭증세에도 자신의 감염을 우려해 ‘원격 집무’에만 전념하고 있다. 총리와 크렘린궁 대변인의 잇따른 감염에 한달 넘도록 크렘린궁으로 출근하는 대신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오가료보 관저에 칩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지사들에게 “지역 사정에 맞게 이동제한 조치를 완화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책임이 따르는 결정은 지방정부로 ‘퉁쳐 놓은’ 상태다.

유럽에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영국은 아예 총리가 역병을 몸소 치렀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호기롭게 “일상을 유지하라”고 외치다 본인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중환자실 신세까지 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최측근인 도미닉 커밍스 총리 수석보좌관이 봉쇄령을 위반해 자택에서 420㎞ 떨어진 더럼을 방문한 사실이 들통나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존슨 총리가 직접 나서 “(커밍스 보좌관은) 책임감 있게 행동했다”며 사퇴 요구를 일축하면서, 집권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이중잣대”라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도쿄 올림픽 정상개최’에 집착하다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내로남불’로 휘청이고 있다.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점찍어 둔 도쿄고검장이 긴급사태가 선포된 와중에도 기자들과 어울려 내기 도박을 즐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확산 정도가 심한 국가에서 특히 지도자와 측근들의 일탈적 행태가 두드러지면서 ‘전염병 팬데믹이 스트롱맨들의 취약점을 노출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코로나19 대응 성과로 호평받고 있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등 여성 지도자들을 ‘좌충우돌 지도자들’과 대비해 언급하며 “여성 국가 지도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전염병 위기 국면에서 효율적인 대처를 통해 안심할 수 있는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