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세대주 지원은 옳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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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난주 ㅣ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세대주가 신청해 받도록 설계한 긴급재난지원금 덕에 주민등록상의 세대가 현실에서 거주와 생계를 같이하는 가구, 가족과 같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왜 애초부터 개인별로 지급하지 못했을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는 가구별 지급이 가구 규모에 따라 개인에게 오는 몫을 다르게 하기에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부터 세대주가 받으면 안 되는 가족들의 사연을 담은 청원이 줄을 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세대주 신청 원칙이 개인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재난지원금은 가족의 형태와 상황에 상관없이 모든 개인이 지급받도록 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행정안전부는 이의신청이 약 7만건에 달했다고 했다. 주민등록상의 세대주가 행방불명이라거나 외국에 있거나 시설에 있기도 했다. 세대주와 세대원이 갈등관계에 있기에 세대주가 수령한 지원금이 세대원에게 쓰이지 않을 경우도 있다.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피해자로 세대주와 다른 곳에 거주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혼한 부부가 건강보험 피부양자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경우 실제 거주와 생계를 같이하고 있는 부모가 아니라 다른 부모 앞으로 자녀들의 지원금이 가기도 한다. 가구 구성이 법적 가족관계와 다른 경우, 이혼소송 중인 가구, 사실상 별거 상태인 가구 등 현실에서 가족의 삶은 세대주가 대표할 수 없는 수많은 경우로 펼쳐져 있었다. 정부는 일선에서 문제가 속출하자 이의신청을 하면 세대주와 분리해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거주와 생계를 같이하면 세대주가 받는 지원이 고른 분배를 보장할까? 이미 일부 언론은 재난지원금을 누가 어떻게 쓰느냐를 두고 가족 갈등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급자가 누구인지는 사회보장의 역사에서 중요한 문제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국가가 아동을 지원해야 하며 그 수당은 반드시 어머니가 받아야 한다는 운동이 있었다. 당시 이 가족수당운동을 이끈 엘리너 래스본은 양육을 책임지는 어머니가 수급자가 되어야 아동을 위해 쓴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1900년대 여성 참정권운동을 하면서 방문했던 수많은 저소득 노동자 가정에서 여성과 아동의 삶이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보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대주, 가구주, 생계부양자가 동등하게 대리할 수 없는 가족원의 권리와 평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기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쯤 전의 일이다.

2018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약 2천가구로 이 가운데 1인 가구가 29.3%로 가장 많다. 2인 가구와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30년 전만 해도 4인 가구가 29.5%로 가장 많았다. 전체 가구의 절반을 4인, 5인 가구가 차지했다. 전체의 28.7%를 차지하던 5인 가구는 오늘날 5.4%에 불과하다.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 단위와 규모가 판이해진 사회인데도 ‘4인 가족’이라는 기준, 부양자와 피부양자, 세대주와 가구주를 찾는 오래된 습관은 더디 변한다. 문제는 현실과 어긋나기 시작한 사회보장제도의 지체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불편과 고통을 겪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이후의 사회를 토론하는 자리들이 열리고 있다. 감염병 방역 대책도 크게 보면 사회구성원의 소득과 건강, 교육과 돌봄을 포괄하는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위험과 싸우면서 얻는 지혜가 사회보장제도의 혁신과 현대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20세기에 도입하여 발전시켜온 공공부조, 사회보험 중심의 소득보장제도에서 일하는 남성과 가사를 전담하는 여성 그리고 자녀들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가족을 전제로 설계된 급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이미 동등하게 교육받고, 모두 직업을 갖고 사회활동을 하고자 한다. 보육과 장기요양제도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특정 생애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돌봄을 사회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제 현대사회의 가족은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의 기초 위에서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다양한 형태로 자유롭게 존재한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사회보장이 더욱 효과적으로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표준적인 가구 단위에 기초한 소득보장의 관습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가족, 그리고 가족 안의 개인들의 삶에 더욱 주목하는 방향으로 사회보장제도의 현대화를 이루어야 한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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