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조용한 학살 / 임윤옥
임윤옥 ㅣ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
인천공항 카페에서 2년 넘게 근무하던 지인의 딸이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부도 물을 겸 전화했더니 그 딸이 다니던 카페는 대기업 위탁 회사인데, 3월에는 희망퇴직, 4월에는 무급휴직을 강요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4월 중순 어느 퇴근길, 딸은 “계약 해지”라는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되고 “눈물이 터졌다” 한다며 지인은 잠시 말을 끊는다. 순간 전화선 너머 짧은 정적이 흘렀다. 불안감에도 잘 버텨보려 했을 딸의 노력이 가장 ‘효율’적 방식인 ‘문자 한 통’으로 꺾인 아픔에 서로 울컥하였다.
고용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고 누군가의 삶이자 일자리이다. 4월 고용통계를 보면 20대 여성은 3월 12만1천명에 이어 4월에도 12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인의 딸처럼 20대 여성은 주로 서비스직에서 파견·용역직으로 일하기에 여, 남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심각하다. 다음으로 40대, 50대, 30대 순으로 일자리를 잃어 전체 취업자 감소의 61.5%가 여성이다. 매일매일 9767명의 여성이 실직하는 꼴이다. 그런데도 막상 수치상의 여성 실업률은 소폭 커졌을 뿐이고,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만 43만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가사, 양육 등 무급 돌봄노동자 증가와 함께 구직 포기자도 늘어났다는 걸 의미한다면 대단히 안 좋은 징후다. 3월 고용통계에서는 일시휴직자의 65.2%가 여성(104만8천명)인데 만일 이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여성 고용 100만 대란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급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는 어떠할까? 바이러스는 과연 여성 노동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불확실하긴 하지만 취약한 노동자, 불안정한 일자리가 더욱 위협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편의점, 식료품점 등에서 무인 계산대가 늘어나는 등 비대면 자동화 경제가 부상할수록 서비스업종에 집중된 여성 일자리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노동의 질은 더 떨어지고 엘리트 노동자와 하층 노동자 간 격차는 더 커져 코로나19 시대에 성별 불평등은 더욱 악화할 거라는 우울한 예측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14일 일자리 대책을 내놓으며 “공공일자리 156만개를 만들고 감염병 대응 산업 육성으로 고용 위기를 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런 대책이 매일매일 꺾여나가는 여성 일자리 문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2월부터 4월까지 모든 고용통계가 ‘코로나19 위기의 얼굴은 여성의 얼굴’이라고 말하는데 여성 고용 위기가 공론화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조용한 학살’이라고 느껴진다. 문제는 디지털 경제 체제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 확률은 낮고 노동환경이 더 열악해진다면 이것이 과연 ‘여성만의 문제일까?’ 하는 점이다. 단언컨대 여성만의 문제는 없다. 그것은 전체 노동시장의 문제이고 양극화의 문제,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여성 일자리 문제는 20년 넘게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는 문제’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단 한번도 놓친 적 없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성별임금격차가 그 증거이다. 여성 일자리 문제는 가정으로 돌아가면 될 일로,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로 성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 교착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적 약자들이 일터에서 집중적으로 사라지는 현재를 방치해서 얻을 미래는 없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가부장적 국가의 귀환이 아니라 성별 격차를 줄이면서 불평등도 함께 줄여나가는 성인지적 고용대책 추진으로 성평등 국가의 미래를 앞당겨야 한다. 예를 들면 비대면 경제만이 아니라 간호사,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 대면할 수밖에 없는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 등 돌봄경제(care economy)를 육성하고, 피해가 집중된 20대 여성이 잃어버린 세대가 되지 않도록 청년 여성을 포함하여 여성 일자리 대책을 추진하자. 가사, 특수고용 등 고용보험 바깥의 노동자에게 긴급실업수당을 지급하고 전 국민 고용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은 재난 시대를 이겨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때를 놓치지 않아야 여러 대책이 버팀목,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미, 또 사후 약방문이 될 것이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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