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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되새김이 필요한 때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지역사회가 코로나19를 톺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대구와 코로나19를 기록한 두권의 책이 나왔다. 지역의 한 출판사가 시민과 의료진의 기록을 각각 책으로 엮었다.

시민의 기록 편은 코로나19로 갑자기 낯설어진 일상의 기록이다. 동네에서 카페와 식당, 세탁소, 꽃집을 꾸려가는 자영업자와 교사, 노동자, 취업준비생 등 시민 51명이 필자다. 감염 우려와 생계 걱정에 움츠렸던 일상을 담담히 적었다. 굳이 글솜씨를 부리지 않아도 모두가 함께 겪은 재난 속 일상은 담담한 기록만으로도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의료진 기록 편은 간호사와 의사, 병원 직원 등 35명이 쓴 생생한 현장 기록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부터 환자들을 지켜야 하는 의료 현장의 긴장과 절박함을 꾹꾹 눌러썼다. 감염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매일 쏟아지는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지 못한 이들의 눈물과 끝까지 살려내지 못한 환자들에 대한 미안함도 담겼다. 의료진의 기록 끝에는 생활치료센터를 나서는 환자들이 전하고 간 쪽지와 손편지가 덧붙었다. 고마움과 존경을 담은 메시지가 무려 36쪽에 이른다.

두 기록의 열쇳말을 추려보면, 놀람, 두려움, 움츠러듦, 그리고 깨달음과 성장이다. 시민들은 짧은 기록 끝에 다짐하듯 희망을 새겼다. 그래서 두 책의 제목을 나란히 이어보면, 이렇게 읽힌다.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

지역 인터넷 매체인 은 ‘코로나19 백서’를 준비하고 있다. 방역 행정, 집단 거주자의 복지 문제, 사회적 안전망, 학생이나 노동자의 시각으로 본 문제점을 기자 넷이 나눠 맡아 정리하고 있단다. 언론이 관찰한 현장에 분석이 더해진 또 다른 기록이 될 것이다. 지역의 연구소와 시민단체들도 코로나19 이후의 길을 찾는 연속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재난 상황에서 드러난 취약계층 보호 체계를 살펴보고, 경제 전망과 과제를 짚는 데 머리를 맞댔다. 재난대응 체계 점검을 다룰 토론회도 이어진다.

이처럼 코로나19를 복기하고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지역 공동체의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져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한 논평을 문제 삼아 진행자인 기자를 검찰에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지난달 7일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는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12일 만에 코빼기를 내민 권영진 대구시장이 전국적인 대유행을 대구에서 막았다고 자화자찬했습니다. (…) 초기 대응이 성공적이었다는 대구시 평가보다는 실패한 늑장 대처 때문에 대구만 역병이 창궐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라고 말했다. 과로로 쓰러진 권 시장이 12일 만에 브리핑을 통해 시민 앞에 모습을 드러낸 데 대해 별다른 설명 없이 담화문만 발표한 것과 미흡한 초기 대응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앞세우는 모습을 비판한 것이다. 이를 문제 삼은 권 시장은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조정이 성립되지 않자 기자를 고소했다. 지역의 언론단체와 시민단체, 진보정당은 한목소리로 ‘언론 통제용, 입막음 소송을 즉각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감당하기 힘든 감염병 확산으로 대구시가 치른 어려움은 충분히 알려졌고, 그 과정에서 부족함도 많았던 만큼 먼저 회초리도 맞았다. 때로 비합리적인 비판과 비난에 속앓이도 했을 것이다. 재난 초기 행정, 의료 체계가 흔들릴 때도 시민들은 불안하고 불편해도 참고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얼마나 갈지, 경제는 얼마나 더 어려워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다독이며 묵묵히 일상을 꾸려간다. 시민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메디시티의 저력’ ‘방역한류 출발지 대구’ 운운 등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시장과 대구시의 자화자찬을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가고 있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라고 판단하여 민망한 일이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대구 경실련의 성명서가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본다. 지금은 슬기로운 되새김이 필요한 때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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