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전문]①정대협, 30년간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했다

"정대협, 30년간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
"왜 바보같이 당했나 생각에 펑펑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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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25 16:49 | 수정 2020.05.25 19:15 ①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정대협은 30년간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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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두번째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이용수 할머니. /뉴시스

제가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한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건 제가 처음 기자회견을 할 때도 말했고, (이후에) 너무도 많이 생각지 못한 게 나왔다. 그것(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 관련 의혹)은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대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이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와 더럽고 듣기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르다.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곳이 다 다르다.

잠깐 제가 갔는 데를 말씀드린다. 우리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이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다. 그때는 성(姓)을 갈지 않으면, 성을 갈아 야스하라 도시코라고 했다. 학교도 일본학교에서 글을 알았다.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서도, 대만 가미가제 협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써줘서 대화를 했다. 이 군인이 하는 이야기도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다. 야수하라고 지어주면서 “나도 도시꼬 같은 피해자 그후에 겪으면서 끌려가서 당한 것은 말로는 못한다”고 했다. 제가 쭉 30년동안 살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증언을 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바른말하고 이러니까(…).

제가 1992년도 6월 25일날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한테 (신고를)했다. 25일날 (신고를)하고, 29일날 모임이 있다고 해 갔다. 어느 교회입디다. 교회에 갔었는데 그날 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 퇴직을 하고 돈을 1000엔인가 준다면서 100만원씩 나눠주더라. 그게 무슨 돈인지 몰랐다. 그때부터 (정대협이) 모금하는 걸 봤다. 왜 모금을 했는지 당시는 몰랐다.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데 기다렸다. 그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하더라. 그 돈을 (정대협이) 받아 오더라. 그게 왜 그런 줄은 몰랐지만, 부끄러웠다. 농구가 끝나면 돈 거둔 것을 받아 나왔다.

좀 늦었습니다. 늦게인데. (윤미향에게) “배가 고픈데 좀 맛있는 것 사달라”고 했다. (윤미향은) “돈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도 그것이 그런가보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도, 교회를 가도, 돈을 주면 그걸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정대협이 하는 모금을)해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무엇인냐. 정신대대책협의회이다. 그러면 (정대협 구성을)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로 해야되는데. 빵으로 말하자면 (겉은) 공장 다녀온 할머니들은 밀가루 반죽해서 만두를 빚어놓고, 그 속은 위안부다. 그저께까지도 몰랐다. 어제 저녁 가만 생각하니, 이건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정대협)이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위안부를 정신대 할머니랑 합해서 쭉 이용해왔다. 저는 그것(정신대·위안부 모두에 대한 활동)도 다 하는줄 알았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수가 있나. 30년동안 앉아가지고 애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사람이 뭔지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고. 이거는 뒤집어 섞어가 사죄하든 말든 놔두는 거 아니다.


이것은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정대협)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이 위안부를 왜 자기들이 정신대 할머니를 이용해서 (정대협 입맛에 맞게)이용해나왔나.

저는 그것(정신대·위안부 모두에 대한 활동)도 당연한 줄 알았다. 어제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동안 앉아서 이야기 한 것이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한다. 이건 사죄하지말고,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니냐.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다.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이 돈(모금액) 받아서. 어제 잠 못잔다. (정대협이) 정신대만 하지, 자기가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모금의 대상으로 사용하나. 이것을 생각하니 자다 일어나서 울었다.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이용당하면서 말도 못했나 생각하니, 그래,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정대협이) 사죄배상 오가는 걸 막지 않았느냐.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나.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가 죽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걸(정대협의 정신대·위안부 구분없는 활동) 30년을 해왔다. 일본 사람들이 바보냐. 정신대대책위원회(정대협)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에)해당하지도 않는데. 일본이 왜 사죄하고 배상하겠느냐. (일본 측에서) 안 하는 이유를 나는 알았다. 이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먹었다. 내가 왜 팔려야 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내 가족이) 아들 육형제에 딸 하나다. 우리 부모님은 불면 날아갈까 놓으면 놓칠까, 쌀 하나놓고 불려서, 엄마가 처음에는 감춰서 “수야 이리온나” 부엌에 가서 먹이고 했다. 이런 남의 집 귀한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대만·신주·가미가제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 가서 전기고문과 갖은 칼 가지고 몸을 그려가지고 이렇게 죽여놨다.

이런데 그 군인이 보니까 그 방에 들어가라고 이렇게 머리를 그냥 질질질 끌고 가가지고 광에 큰거 문을 확 열디만은 확 밀었다. 또 이렇게 해가지고 발로, 그것은 돌뿌리보다 더 여문 군홧발이었다. 허리를 발길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서. 잘못한 거 없지만 그런 데도 살려달라고 했다. 이런 데도 머리카락 잡아뜯고 앉혀서 두 팔을, 한쪽팔을 테이블에 걸어놓고 (손목 가리키며)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도 생각난다. 엄마라고 크게 불렀는데 이게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난다. 이거 왜 그런지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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