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건 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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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랑스의 게임 개발사인 유비소프트가 두 개의 무료 콘텐츠를 공개했다. '어쌔신 크리드 디스커버리 투어'.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과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의 게임 내 모드인 이 콘텐츠는 게임 속에 구현된 세계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전투와 시나리오, 게임 시스템을 제외한 세계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껍데기 세계를 준 건 아니다. 디스커버리 투어에는 기존 게임에는 없는 다른 콘텐츠가 들어 있다. 안내자와 지식. 게이머는 세계 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다양한 지역을 탐험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설명까지 들어볼 수 있다. 어떤 식이냐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영상으로 한번 보고 가자. 직접 찍은 따끈따끈한 영상이다.

이 영상은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디스커버리 투어 편에 실려 있는 '거대 피라미드의 비밀' 편 투어 영상이다. 이 투어는 총 15개의 지점으로 이뤄져 있고, 각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영상 자료와 함께 해설자의 설명이 나온다. 영상에서는 길을 따라서 빠르게 진행했지만, 원한다면 경로에서 이탈해 마음껏 돌아다닐 수도 있다.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기? 당연히 가능하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퀄리티는 놀라울 정도로 높다. 볼륨 또한 마찬가지.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편만 해도 저런 투어가 70종 이상 준비되어 있고, 한 편의 예상 소요시간은 최소 5분에서 길게는 20분 가까이 준비되어 있다. 최소 시간으로 쳐도, 다해서 7시간 정도의 볼륨이 나온다.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정도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 푹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공짜로 풀리긴 했지만, 무료치고는 생각보다 빵빵한 볼륨의 콘텐츠다.

고대사를 좋아하는 게이머로서, 이 디스커버리 투어는 꽤 좋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 등으로 유럽을 몇 번 방문한 적도 있고, 피라미드나 알렉산드리아도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이미지로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물론 디스커버리 투어라고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지는 못했을 거다. 하지만 중간마다 보여주는 현대적 참고자료를 보고, 해설을 들으며 가상 속 세계를 거닐고 있으면 마치 장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지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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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쌔신 크리드 특유의 비주얼도 만족감에 한 몫 한다

이와 별개로, 어쌔신 크리드의 다음 시리즈 중 하나는 한국이 무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기대까지 하진 않았다. 세계사를 놓고 보았을 때 이슈가 되었던 시대와 공간이 어디 한둘이던가. 동아시아 최고의 이슈 시절이던 중국 후한 삼국시대도 얼마 전에야 서구권 개발사로부터 처음 다뤄진 상황에, 한국의 특정 시대가 대규모 프로젝트의 무대가 되는 건 솔직히 욕심이라 생각했다.

작년 가을, 동료 기자 덕분에 표를 구해 한국 문화재재단에서 진행하는 '창덕궁 달빛 기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약 2시간 정도 진행하는 행사 동안, 관객들은 청사초롱을 손에 들고 정해진 코스를 돌며 창덕궁의 야경을 보고, 동행하는 전문가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을 듣게 된다. 표를 살 때만 해도 생각보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역사적 명소를 직접 밟으며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쉽게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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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과 더불어 다양한 체험이 가능했던 '달빛 기행'

디스커버리 투어는 그것을 가상으로 옮겨 두었을 뿐이다. 접근성도 더 좋고, 이어폰을 끼면 설명을 귀에 박아넣을뿐더러 적절한 이미지 자료까지 보여준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세계를 이 잡듯 뒤지고 다닐 수 있는 건 덤이다. 그렇게 이집트와 그리스를 돌아다니며 때아닌 역사탐방을 하던 중 이런 생각이 든다.

'꼭 유비 소프트가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

게임 관련 행사만 하면 들리는 슬로건이 '게임은 문화다'이다. 게임업계에 대한 부당한 정책이 발의될 때, 그리고 강력 범죄의 원인으로 게임이 지목될 때, 업계는 늘 게임이 문화임을 강조하며 맞섰다. 물론, 맞는 말이다. 게임은 문화가 맞다. 하지만, 현재의 게임이 특정 세대, 특정 계층으로부터 비우호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임업계는 게임이 젊은 층의 유희성 문화를 넘어서, '주류'가 되길 바란다. 영화를 따라 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영화 산업 자체는 공격당하지 않는 것처럼, 문학에 등장한 잔인한 묘사가 곧 문학 자체의 잔인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게임 산업 자체의 순수성을 이룩하고 싶은 것이다. 업계인으로서의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슬로건이 담은 진의는 뭉쳐지지 않은 채 파편화되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게임과 관련된 정부 프로젝트는 눈먼 돈을 노리는 승냥이들의 잔칫상이며, 게임을 문화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개발사들은 이득 없는 사업에 좀처럼 눈을 두지 않는다. 아마 그간의 정부 지원금이 낭비 없이 모여 의지와 능력이 있는 개발사로 향했다면 디스커버리 투어에 준하는 퀄리티로 한국사를 소개하는 콘텐츠 정도야 충분히 뽑아냈을 것이다.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그냥 이집트랑 그리스, 그리고 유비소프트가 있는 프랑스가 부러웠다. 게임이 문화가 되는 과정이 뭐 별것 있나? 디스커버리 투어만 봐도 답이 나온다. 게임 속 어셋을 재활용해 교육적 콘텐츠를 끼워 넣은 형태에 불과했지만, 플레이 과정에서 충분한 지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억지로 '게임은 교육적이다'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플레이어가 충분히 교육적 효과를 납득할 수 있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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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로 임진왜란 당시의 삼남 지방을 돌아보고 싶다. 일제강점기의 경성도 돌아보고 싶고, 조선시대의 궁궐도 살펴보고 싶다. 그런 차원의 단순한 부러움이 들었을 뿐이다. 게임이 문화로서 존중받기 위해 나아갈 길이 꼭 하나는 아닐 거고, 분명 찾아보면 더 좋은 방법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디스커버리 투어는 완성된 하나의 형태는 충분히 보여주었다.

죽기 전에는 그런 걸 볼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다만, 어떤 형태가 되었든 유비소프트가 세계의 역사적 소재를 다 거덜 낸 끝에 한국사를 주무르기 전에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길 바랄 뿐이다. 정부와의 합작 사업이든, 돈 많은 개발사의 사회 공헌이든 큰 상관은 없다. 만약 그런 작품이 나온다면, 지금보다는 국내에서 게임의 입지가 주류 문화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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