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드머니 1천억 원 펄어비스, "글로벌 유망주에 투자한다"
by 이두현 기자'검은사막' IP로 대표되는 펄어비스에 투자 사업은 일반 게이머에게 다소 낯설 수 있다. 펄어비스는 본업인 게임개발 및 서비스 외에 금융투자를 꾸준히 해왔고, 올해 1분기에 금융수익으로 161억 원을 거뒀다.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308% 증가한 수치다.
펄어비스의 투자가 본격화됐다. 대상은 다양하다. 펄어비스는 2018년 '이브 온라인' 개발사 CCP게임즈 인수에 2,524억 원을 썼다. 지난해 펄어비스는 인디게임 '크로노소드' 개발사 21세기 덕스에 2억 원을 투자했다. 게임 외에 기술에도 펄어비스는 투자를 이어나가고 있다. 작년 얼굴 인식 VR앱 'Hyprsense'과 올해 코딩 교육 스타트업 '코드잇'에 투자했다.
김경엽 펄어비스 투자총괄은 1천억 원을 국내 중소게임사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엽 투자총괄은 넥슨 데브캣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며 게임업계 경력을 쌓았으며, 스톤브릿지캐피탈과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에서 펄어비스를 포함한 투자를 담당했다. 펄어비스의 투자전문회사 '펄어비스캐피탈'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개발사로 이미 유명하다. 이러한 펄어비스가 투자한다는 소식은 다소 생소한데.
= 내부적으론 상장 전부터 많은 투자를 해왔다. 대표적으론 '넷텐션'과 'CCP 게임즈' 인수다. 최근에는 인디게임 개발사 '21세기덕스'도 알려졌다. 펄어비스는 개발기술이 탄탄한 회사 위주로 투자를 계속해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도 저희와 생각이 맞닿아있는 게임개발사 위주로 투자할 의향이 있다.
펄어비스와 생각이 맞닿은 개발사라고 한다면?
= 펄어비스가 추구하는 방향은 2가지다. 아무래도 펄어비스는 MMORPG를 만들고 원천 기술개발에 신경 쓰는 회사다 보니, 자신만의 기술을 가진 회사에 관심이 간다. 게임성으로 따지면 코어 한 장르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회사를 주목하는 편이다.
펄어비스는 내부적으론 "언제나 최고최선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개발에 집요한 야성을 추구한다. 일정한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모습을 위해 달려가는 마인드다. 펄어비스가 이렇다 보니 투자하려는 회사를 찾을 때도 이러한 마인드를 가진 중소게임사를 더 눈여겨보게 된다.
최근 21세기덕스에 투자한 것이 알려졌다.
= 21세기덕스가 개발하고 있는 '크로노소드'가 좋은 예다. 한국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고, 그 게임만의 코어함이 돋보였다. 21세기덕스 이정희 대표와 펄어비스 개발진이 아는 사이여서 교류가 있었는데,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서 펄어비스가 투자하기로 했다. 펄어비스가 홍보 목적으로 투자하는 건 아니어서 굳이 알리진 않았었다.
괜찮은 게임을 개발한다면 차라리 인수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 투자 목적에 따라 방법이 다를 거 같다. 넷텐션이나 CCP게임즈는 이미 개발을 완료하고 결과물을 내 비즈니스를 하던 회사이다. 인수하는 것이 펄어비스의 장기적인 사업 관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인디게임사에 대한 투자는 다르다. 그들이 만들고 싶은 게임성이 있고 추구하는 정신이 있다. 21세기덕스 측과 이야기를 하면서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얼마가 필요할지를 생각했다. 많은 중소게임사가 돈을 구하느라 개발을 늦추는 경우가 잦다. 돈 걱정에서 벗어나면 온전히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그들이 하고싶은 걸 온전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목적의 투자인 셈이다.
▲ 21세기덕스의 '크로노소드'
지금까지 펄어비스가 투자한 대표 사례, 포트폴리오가 궁금한데.
= 금융감독원에 공시한 게 전부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한 우리나라 중소게임사를 더 만나고 싶다.
중소게임사가 펄어비스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딱히 내부에 정해진 절차는 없다. 다만, 투자총괄 입장으로서 내가 먼저 검토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정하는 건 아니다. 펄어비스 경영진과 논의를 하고, 개발사도 만나고, 가진 기술력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면서 결정하게 된다. 절차보다는 게임개발자로서의 공감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펄어비스가 중소게임사 투자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배경이 있을까?
= 펄어비스도 처음에는 어려운 스타트업이었다. 초기 펄어비스는 대형 게임사나 투자사로부터 돈을 유치해왔고, '검은사막' 개발 이후에는 퍼블리싱 계약으로 개발비를 조달해왔다. 이후 상장을 하고 현재 자리까지 왔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도 대형 게임사가 됐다고 판단한다. 이 자리까지 오는 데 업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 만큼 펄어비스도 업계에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중소게임사가 성공하기 어려운 한국 시장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우리와 같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길 바라고 있다. 현재도 여러 투자를 검토하고 있고, 집행으로 이어지는 것도 있다.
중소게임사 투자에 김대일 의장 의지도 있는 건지?
= 김대일 의장 의지 없이는 안 될 일이다. 김대일 의장이 투자의 큰 방향성 정도만 짚었고 세세하게 정하지는 않았다. 세세하게 정하는 거 자체가 투자의 한계치를 만든다. '개발력이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 함께 성공할 수 있는 게임사'가 김대일 의장이 제시한 투자 방향이다.
대표적인 투자로 손꼽히는 CCP게임즈 인수 배경이 궁금하다.
= CCP게임즈는 '이브 온라인'이라는 코어 한 게임을 아주 오래 서비스해왔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IP라면... 스타트랙이나 스타워즈 정도인데, '이브 온라인'은 우주SF IP로도 성공을 거뒀다. 또한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이브 온라인'을 주제로한 커뮤니티도 탄탄하다. 여러 요소를 종합했을 때 인수하는 것이 펄어비스의 장기적 비즈니스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이야기로는, CCP게임즈는 아이슬란드에 있는 게임사다. 아이슬란드에는 CCP게임즈 정도 되는 게임사가 더 없다. CCP게임즈 개발자에게 '이직'에 대해 물었더니, 다른 게임사에 가려면 '이민'을 가야 한다고 하더라. 이처럼 작은 나라에서 '이브 온라인'과 같이 코어 한 게임을 훌륭한 IP로 키워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펄어비스도 어려운 환경에서 '검은사막'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이런 면이 서로 닮았다고 생각한 점도 인수에 영향을 끼쳤다.
또 다른 대형게임사 인수를 고려하나?
= 검토를 하기는 한다. 그러나 검토한다고 해서 다 이어지는 건 아니다. 대형게임사 인수는 회사 입장에서 한두 푼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펄어비스 입장에서 정말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국내 중소형게임사에 투자하면서 저희를 알리기로 했다.
펄어비스가 스타트업과 중소게임사를 거친 회사로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짚는다면?
= 역시 돈이다. 왜 중소게임사가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지, 원인이 어디서 촉발된 건지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할 거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최근 몇 년간 매출 순위를 살피면 대형게임사의 IP 게임 위주로 고착화되고 있다. 경향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게임사가 매출순위에 진입하기 어렵고, 진입하더라도 대형게임사의 어마어마한 마케팅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중소게임사는 1~3억 원을 마케팅에 쓰기 겁나지만, 대형게임사는 수백억 원을 마케팅비에 쓰니까.
물론 해외시장도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여러 플랫폼을 통해 해외시장을 공략한다면, 국내시장만 바라보던 때보다 성공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펄어비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플랫폼을 서비스한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을 활용해 중소게임사와 같이해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다.
투자 시드머니는 얼마 정도 생각하는지?
= 내부적으로 중소게임사 투자 금액으로 '1천억 원'까지 생각한다. 단기간에 하나의 게임사에 1천억 원 쓴다는 얘기는 아니다. 좋은 중소게임사, 다양한 게임에 투자를 생각하고 있다. 1천억 원도 딱 정해놓은 금액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투자 외에 펄어비스가 다양한 지원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개발장소를 빌려준다거나 퍼블리싱을 한다거나.
= 공간 제공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퍼블리싱은 투자와 결이 다른 이야기 같다. 퍼블리싱을 맡게 되면 사업적인 성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퍼블리싱은 회사의 성공을 나눈다는 느낌이 있다. 현재로선 중소게임사가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투자까지만 생각하고 있다.
펄어비스에 투자를 받고 싶은 중소게임사가 있다면,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는 눈이 중요하다. 국내에서 유행하는 트렌드를 쫓아가기보다는, 글로벌 트렌드를 자신들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더 와닿는다.
펄어비스는 기술 투자도 여러 건을 진행했다. '검은사막' 개발에 도움이 되는 기술에 투자하는지, IT산업에서의 유망 기술에 투자하는지 궁금한데.
= 어려운 질문이다. 넷텐션 인수처럼 펄어비스 '검은사막' 서비스에 직접 필요한 기술은 확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펄어비스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기술이 있다 싶으면 만들어서 쓰는 개발사다. 그렇다보니 기술투자로 외부에서 보충하는 경우는 건수가 많지 않다.
펄어비스의 투자전문회사 '펄어비스캐피탈'을 통해 기술투자를 한 사례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펄어비스가 개발하는 게임이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해서다. 결국 기술투자에 있어서는 항상 열려있다.
벤처투자업계에서도 펄어비스의 투자에 관심을 둔다. 앞으로 행보가 궁금한데.
= 선배 게임사로서 움직이고 싶다. 전문성이 있고 개발력이 있는 중소게임사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희망할 때, 자금문제로 휘둘리지 않도록 돕고 싶다. 펄어비스가 일으키는 선순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돋보이는 우리나라 중소게임사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