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장 입사, 아들의 일상은 '지옥'이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 고 김동준군 엄마 강석경씨의 편지
by 강석경(sharps)김용균법이라 불린 산업안전보건법이 올해 시행되었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피해가족들과 시민사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발족하려 합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를 산재피해유가족과 동료가 나서서 이야기합니다. 이 기고문은 <오마이뉴스>와 <미디어오늘> <민중의소리> <참세상> <프레시안>에 공동게재됩니다. - 기자 말
고등학교 현장실습 중 사망한 동준엄마 강석경입니다. 2013년 마이스터고 3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었던 동준이는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습니다. CJ 전체 오리엔테이션, 진천공장 연수를 차례로 마치고 현장에 배치된 순간부터 동준이의 일상은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노동 현장의 가장 밑바닥에 있었던 현장실습생 동준이에겐 같이 일하는 모든 동료가 선임이고 상사였습니다. 18살 생애 처음 경험한 노동 현장에서 동준이는 일이 서툴 수밖에 없었고, 선임들에게 계속 혼나는 상황을 힘겨워 했습니다. 동준이가 힘들다고 말했을 때 저는 '처음에는 다 그래, 일에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참아보자'라고 말했습니다.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CJ제일제당은 명절이 있는 달에 특히 일이 많습니다. 출근도 일찍하고 잔업이 잦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보면 '1시간에 한해서 협의 하에 연장 근로한다'고 돼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동준이가 그해 1월 19일 가족들에게 "1월 13일부터 설 특수 기간이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근무를 하는 날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기 싫다고 빠지기도 어려운 구조에서 동준이는 장시간 일하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누구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2013년 1월 16일은 분임조 회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동기 중 조장 역할을 하던 A씨 등은 동준이와 또 다른 동기를 불러내 엎드려 뻗쳐를 시켰습니다. 이들은 두 사람의 따귀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폭행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협박도 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동준이 트위터 친구들과의 대화 등에 남아 있습니다.
동준이는 이후 자신이 다니던 학교 선생님에게 이 사건을 털어놓습니다. 선생님은 20일 회사 담당자를 면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20일) 아침... 동준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고 후 회사는 동준이의 죽음이 초과근무와 사내 폭력 등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사건 발생 당시 CJ진천공장 인사과에 근무한 박아무개씨는 지난 2014년 2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사원들의 동의 하에 초과근무가 이뤄졌"고 "공장 내 사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는데 사내 폭력이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편집자주). 동료들도 조문을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무얼 해야 할지 몰랐고 '산재를 신청할 테니 적극 협조해 달라'는 말만 하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산재를 신청하고 회사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당시 담당자가 전근 가서 알 수 없다'며 자료 제출에 협조하지 않았고, 동료들도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18살 현장실습생 학생이 폭행과 집단 괴롭힘 무서운 협박에 시달려 세상을 떠났는데, 같이 일했던 누구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응답하지 않은 그들 모두 동준이를 죽게 만든 공범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동료의 죽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는 회사의 구조도 이런 사고가 계속 이어지게 만드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폭행에 가담한 사람들 중 한 명만 벌금형에 처해졌고, 나머지 공범들과 회사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동준이의 죽음에 만 18살 현장실습생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부인했지만, 몇 달이 지나고 동준이와 함께 피해를 입었던 23살 형이 나중에 알려줬습니다. 폭행을 주도했던 한 명이 동준이 사고에 대한 조치로 보직변경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이를 통해 사고가 회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지난 2015년 미성년 현장실습생 중 최초로 산재 사망을 인정받게 됐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을 견디며, 동준이의 죽음이 동준이의 잘못이 아니라 회사의 잘못된 구조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을 확인받았습니다.
동준아 너의 나약함이 아니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엄마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구나.
사람들이 날마다 죽어 나가는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너를 죽게 만들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죽게 놔두고 있구나.
미안함에 울고 있을 자격도 없는 엄마가 너의 죽음을 말하며,
다시는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너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하고 있단다.
미안하다.
마이스터고에 보내서,
너무 어린 너를 현장실습에 보내서,
힘들다 말할 때 돌아오라고 하지 않고 조금만 견디어 보자고 해서 너무 미안해.
미안해, 아들...
지금도 곳곳의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일터는 안전한가요? 안전하지 않아도 직장이 있으면 감사한가요?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현장을 만들어 달라는 게 과한 요구인가요? 부당한 일을 하지 않으면 잘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당연한 일인가요?
현장은 현장 근무자가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합니다. 일하는 노동자 스스로가 말해야 합니다. 바꿔달라고, 안전하게 바꾸어 달라고 외쳐야 합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은 버리고 같이 안전하게 일하고 함께 퇴근할 수 있게 노동자인 우리가 먼저 외쳐봅시다. 함께 외쳐야 우리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또 다른 나 자신임을 잊지 말고, 집단 괴롭힘이나 폭행이 없는 직장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데 각자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강석경씨는 CJ 진천 고교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 어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