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섯에 오토바이 타기 시작한 신계숙 교수 “오늘 하고 싶은 건 오늘 한다!”[플랫]

코로나19 정국에도 스타는 탄생한다. 지난달 EBS <세계테마기행> ‘꽃중년 길을 나서다’(5부작)편에 출연해 스쿠터를 몰며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현지인의 주방에서 능란하게 중국요리를 만들어 나눠먹고,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남매·자매가 되는 놀라운 친화력을 과시한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 교수(56)가 주인공이다.

그의 활약상을 한 시청자는 “오랜 ‘집콕’ 생활에 지친 이들의 명약”이라 일컬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재방 요청은 물론 미공개 영상을 풀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중년 여성 출연자는 시청률이 별로 높지 않다”는 방송사 내부의 우려를 깨고 신 교수 출연 회차는 올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촬영은 늦겨울 중국 남부 소수민족이 사는 변방과 대만에서 한 달 동안 진행됐다. 경동시장에서 그를 알아본 이들에게 둘러싸여 즉석 팬미팅을 열 정도로 유명해진 신계숙 교수를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개인연구실에서 만났다.

오후 3시에 만난 그의 첫마디는 “밥 먹었어요?” 이미 화구 위에는 커다란 냄비가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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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다섯에 딴 오토바이 면허 “달리면 길, 서면 주차장” |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도전하기 위해 지난해 마련한 할리 데이비슨에 오른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 신계숙 교수는 “달리면 길이요, 서면 주차장”이라며 오토바이 예찬론을 펼쳤다. 권호욱 선임기자

- 중국어 능통 외에 다른 출연 요건이 있었나요.

“첫 번째가 중국어 능력, 두 번째가 요리 실력, 세 번째가 한 달 동안 다닐 수 있는 체력이었어요. 경험이 없다보니 NG를 6번 내기도 했는데 PD님과 (카메라) 감독님이 많이 격려해줬어요. ‘우리끼리 재밌게 찍으면 보는 사람도 재밌어하지 않겠느냐’며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라 했죠.”

- 다양한 현지 음식을 맛봤는데 “어서 먹어보라고 혀를 자극하는 당당한 맛”(무화과 빵)이라거나 “전분 소스와 양상추가 두 편으로 나뉘어 부드러움과 아삭함의 대결을 벌이는 맛”(굴전) 등 맛 표현이 남달랐습니다.

“저는 음식을 맛있다, 맛없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데 내 입에 안 맞는 거죠. 다만 ‘커피 수란’은 진짜 감당하기 어려워서(웃음), 많이 고민하다가 ‘커피 따로, 계란 따로 먹고 싶다’고 말한 거예요. 제가 요리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하고 싶더라고요.”

- 밀림에서 로프를 잡고 가다가 남긴 말도 화제였습니다. “아저씨가 손을 잡아줘서 거기 집중하다 줄을 놓쳤네요. 남자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줄 하나 믿고 가는 게 낫겠어요!” 평소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던데요.

“TV를 보니 저도 모르게 그런 명언을 남겼더라고요(웃음).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그 순간을 많이 좋아하신 거 같아요.”

- 뛰어난 친화력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제 후배가 ‘왜 언니는 사람들과 친할까’ 생각해보니 사투리가 비결인 것 같더래요. 그래서 사투리를 써봤는데, 안 친해지더라는 거예요. 제가 시장 가면 할머니한테도 가끔 ‘오늘은 월매나 팔았어?’라고 하거든요. 저 따라서 반말을 해봤다가 남편한테 야단만 맞았대요(웃음). 저는 특별히 친화력이 좋다는 생각은 못했고, 그냥 어디 가면 무조건 말을 붙이거든요. 그럼 대부분 좋아하며 반응을 하셨어요. 버스에서도 옆 사람과 계속 얘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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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중년의 뉴모델,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 신계숙 교수. 권호욱 선임기자

중국어 전공하고 중식당 주방으로

신 교수는 언니 둘, 오빠 둘을 둔 막내딸이다. 충남 합덕에서 농사짓던 부모님은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계숙인 내 거야” 하고 ‘소유권’을 주장하곤 했다. 아주 먼 기억이지만 ‘내가 되게 소중한 존재인가보다’ 여겼다고 한다.

14세 되던 해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오빠를 따라 상경했고 단국대에 진학해 중국어와 문학을 공부했다.

- 화교거나 중국에 각별한 연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제 기억에 시골집 도배지가 동아일보였던 거 같아요. 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소 수레 타고 합덕장에 다녀오시는 길에 파란 칠판을 사다가 제 눈높이에 걸어주셨어요. 벽에 있는 걸 그려보라고 하셔서 자연스럽게 한자를 쓰며 놀았어요. 木 비슷하게 그려놓으면 아버지가 ‘계숙이가 나무 목을 썼구나. 이건 네 이름 계(桂)의 앞에 있는 글자야’라고 가르쳐주셨죠. 한자를 좋아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중문과를 가게 된 거죠.”

- 당시 4년제 대학을 졸업했으면 다른 선택지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중식당 주방을 택했나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교수님께서 화교분이 하는 중국집을 소개해주셨어요. 거기가 이향방 선생님의 향원이었어요. 두 달간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 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1987년 당시 전국의 중국집 주방에 여자는 저 혼자였을 거예요. 남자들이 저를 ‘이지메’(집단따돌림)했어요. 수도꼭지조차 건드리지 못하게 해서 왜 그러느냐 했더니 ‘너는 대학도 나오고 여자인데 왜 우리 밥그릇을 뺏으려 하느냐’고 했지요.”

신 교수는 큰 결심을 앞두면 A4용지에 해야 하는 이유를 써보곤 한다. 요리사가 되고자 할 때도 그랬다. 여자의 직업으로 어떨지, 나에게 도움이 될지,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줄지. 다 동그라미가 쳐졌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그를 중식당으로 이끈 중화요리 대가 이향방 선생이 ‘주방에서 사흘을 견디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한 것이다.

- 요리해보라고 할 땐 언제고 왜 그러셨답니까.

“제가 접객을 너무 잘한 거죠(웃음). 자주 오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치아가 없는 거예요. ‘오늘은 소고기를 다져서 부드럽게 해드리겠습니다’, 다음에는 ‘닭고기를 다져서 요리해드리겠습니다’ 했더니 어느 날 그분이 구찌 시계를 선물로 주셨어요. 전 그게 명품인 걸 몰랐어요. 옆에 언니가 시계 없다기에 줬지요.”

- 남자들 숲인 주방에서 그 텃세를 어떻게 견뎠나요.

“그냥 견뎠어요. 100일 정도 지나니까 주방장님이 ‘손을 이렇게 해서 고기를 쥐어봐라, 이만큼이 250g이다’라고 하셨어요. 바쁠 때는 저울에 잴 여유가 없다면서요. 일하다보니 왜 중국집 주방에 여자가 없는지 알겠더라고요. 산소가 머리로 올라가지 않아요. 일 끝난 뒤 주방문 열어놓고 심호흡을 해야 겨우 숨이 쉬어져요. 습관이 되니까 또 할 만하더라고요. 그렇게 8년을 탕수육 튀기는 불 앞에 있었어요.”

-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요.

“어느 날 팔에 화상을 입고 들어갔더니 오빠가 당장 그만두라고 했어요. ‘왜 그만두느냐, 내 인생은 내 거다’ 충돌이 나서 그날로 집을 나왔어요. 친구들은 출가를 할 나이에 저는 가출을 하게 된 거예요(웃음). 그로부터 3년간 오빠를 안 봤어요. 요리학원 창고에 스티로폼을 깔고 몇 년을 살았죠. 나중에 들으니 아버지가 ‘내가 계숙이를 대학 가르쳐 놨는데 중국집에서 식모 산다’고 가슴 아파하셨대요. 몇 년 뒤 부모님을 향원에 모셔서 요리를 해드렸어요. 대통령들 오시는 음식점이라는 걸 아시고는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려운 시대에 요리를 했죠.”

- 향원 출신이란 간판만 내걸고 개업했어도 잘됐을 텐데 또 의외의 진로를 택했습니다.

“선생님이 하시는 식생활문화학회에 가서 만두피 미는 보조를 했어요. 그때 박사과정에 있던 친구가 식품학 공부를 해보면 좋겠다고 권했어요. 이화여대 대학원(식품학 석·박사)에 갔고 마침 조리과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취직한 곳이 배화여대였죠. 21년 됐네요.”

- 다른 걸 할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까.

“한 번도 없어요. 집에 사람 불러서 먹이는 것도 좋아해요. 어느 해에는 1년에 120명을 불러서 밥을 해먹였더라고요. 사람들이 월급 받아 ‘빵꾸’ 안 나느냐고 하는데 어디선가 채워져요. 신비한 게 있더라고요. 오늘은 승진한 후배한테 사장님이랑 임원들 모시고 오라고 했고, 내일은 삼성전자 다니는 조카가 동료랑 와요. 저는 ‘언제 밥 한번 먹어요’ 이런 빈말은 절대 안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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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테마기행> 중국·대만 편에 출연해 요리 솜씨를 발휘한 신계숙 교수. EBS 제공.

오늘 하고 싶은 건, 오늘 하자

<세계테마기행>에서 동트는 평원 앞에 선 신 교수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거리…”(박경희의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를, 스쿠터를 타고선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불러 젖혔다. 제작진의 배경음악 선곡 수고를 덜어준 ‘인간 주크박스’는 렌터카 도착이 늦어지자 그새를 참지 못하고 도로에서 기타 줄을 튕겼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동안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중년이란 의미의 ‘꽃중년’ 타이틀은 그래서 신 교수와 착 맞아떨어졌다.

- 스쿠터나 기타 실력이 멋으로 하는 수준이 아닌 듯했습니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남들은 10대, 20대에 하는 건데 저는 그때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잖아요. 30대, 40대는 너무 바빴고요. 저는 쉰 살이 한 살인 거 같아요. 쉰 살이 되고, 더 이상 내 인생이 새로워질 게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내일도 오늘처럼 살겠구나. 그동안은 내일을 살았잖아요. 내일을 위해 준비하고, 내일을 위해 저축하고. 그렇게 살다가는 늘 오늘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오늘 하고 싶은 걸, 오늘 해야겠다!”

- 그래서 무엇을 했나요.

“재작년 3월에 갱년기 열증이 나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렸어요. 히터를 켜면 덥고, 끄면 추워서 오토바이를 사려 한다니까 선배가 ‘야, 타던 것도 관둬야 되는 나이 아냐?’ 하는 거예요. 그날로 가서 스쿠터를 샀어요. 숑숑숑 ‘칼치기’도 하고 잘 탔는데, 스쿠터가 바람에 약해요. 그래서 좀 더 안전한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작년 8월에 오토바이 면허를 땄어요.”

- 사는 동안 가장 잘한 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싶은 것 도전한 거요. 친구들은 ‘나도 오토바이 타고 싶었어’ ‘나도 악기 할걸’ 해요. 저는 ‘내가 그때 그걸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하죠. 하고 싶은 건 그냥 하는 거, 간단하잖아요. 1번 궁둥이를 든다, 2번 기타학원 간다, 3번 돈 낸다. 그런데 그게 어려운 모양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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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개인연구실에서 만난 신계숙 교수는 즐거움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나요.

“중2 때 사는 것에 대해 고뇌한 적이 있어요.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혼자 가야겠다’ 했지요. 사람들이 외롭지 않냐고 하면 ‘야, 외롭다는 말이 독일어냐 불어냐 나는 못 알아듣겠다’고 해요. 외로울 새가 어딨어요. 하루가 얼마나 짧은데요. 이번에 촬영 갔을 때 드론을 멋있게 띄우는 걸 보고 제가 드론도 하나 샀잖아요(웃음). 결혼 안 했다고 후회 안 해요. 전 한번 마음먹으면 잘 안 바꾸는 거 같아요.”

- 앞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청나라 때 문인 원매가 지은 고조리서 <수원식단(隨園食單)>을 연구하고 있어요. 다른 요리책에는 요리 방법만 있다면, 이 책에는 요리사가 꼭 알아야 할 20가지, 요리사가 하면 안 되는 것 14가지 등 이론이 담겨 있어요. 지금 사람들은 음식을 오락으로 여기는데, 혀가 좋은 음식이 아닌 내 몸과 정신을 이롭게 하는 음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성찰해야 해요. 심도 있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 방송 재밌게 보셨던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인들은 ‘평상시 고대로 나왔네’ 해요. 전 즐거워서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하니까 즐거워졌어요. 노래를 하니 마음이 시원해지고, 스쿠터를 타니 몸이 시원해지더라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즐거워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지, 즐거움이나 평화는 그냥 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 방송에서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는 행복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제 친구가 ‘나는 태어나서 너처럼 밥을 맛있게 먹는 애는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밥알을 젓가락으로 한 알 두 알 세서 먹으면 맛없어요. 숟가락으로 많이 퍼서 먹어야 맛있어요. 밥도, 즐거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밥을 푹푹 퍼먹고 김치도 밥 위에 얹어서 잘 먹는 친구들은 대개 긍정적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밥맛 없다는 사람을 보면 ‘내가 밥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부터 하죠. 전 돌아서면 배고파요. 아까 오셨을 때도 배 안 고프냐고 했잖아요(웃음).”

제피를 넣어 매콤함이 더해진 족발조림이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신 교수의 주크박스가 재생됐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데 장 기자님 날 찾아오셨네….”


장회정 기자 longcut@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