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1면 뒤덮은 이름... 그리고 죽음의 불평등
[주장] 미국의 '코로나19 흑인 사망률'이 보여주는 것
by 최인호(acmax7)지난 23일(미국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1면이 화제가 됐다. NYT는 이날 한 면 전체를 코로나19로 사망한 1000명의 명단으로 채웠다(해당 기사 : https://www.nytimes.com/2020/05/23/reader-center/coronavirus-new-york-times-front-page.html). 미국은 내주 초에 코로나19 사망자 숫자가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3개월 동안 하루 평균 1100명가량이 사망했음을 의미한다.
미국 각지 신문들에 실린 부고를 모아서 작성한 이 명단에는 이름, 나이, 거주지 그리고 직업 등이 소개돼 있다. NYT는 사망자를 기리는 한편, 미국인들이 이 사태를 다시 회고할 수 있도록 이 명단을 실었다고 설명했다.
10만 명.
이것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매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10만 명의 다양한 삶까지 전달하진 않는다.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노동자와 학생, 가수와 여행객, 암을 이기고 생존했던 사람과 간호사, 자영업자와 공무원, 자원봉사자와 어린아이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물이 포함돼 있다.
얼마 전까지 친숙했던 누군가가 이 명단에 포함돼 있으며, 그 사람은 2345번째 사망자일 수도 있고 7만9342번째 사망자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얼마 뒤 10만 번째 사망자로 기록될 것이다.
그 사람은 환자들이 가득 찼지만 가족은 볼 수 없는 병원에서, 또는 배우자가 창문을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는 요양원에서, 또는 매우 가난하고 병원에 가기도 힘든 빈민촌 아파트에서 사망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그의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해줄 수 있었다. 사망 이후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고인을 기리며 기도하고,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을 안아주며 위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질병이라서, 이젠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손 한 번 잡을 수 없고 말 한마디 나눌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가 바꾼 것들
얼마 전 미국 언론에는 죽어가는 엄마가 병원에서 제공한 무전기를 통해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이 보도된 적도 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대화할 순간이라도 주어지면 행운이다. 많은 경우 코로나19 환자는 병원에서 혼자 앓다가 사망한 후 시신 안치소로 이송된 뒤에야 가족에게 알려진다.
생전에 가까웠던 가족·친척·친구의 사망 소식은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달된다. 장례식은 기껏해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안아주지도 못한 채 말이다. 참배객들이 공동묘지에 따라갈 때도 멀리 차 안에서 관에 담긴 고인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어느 지역에서는 사망자가 너무 많아서, 죽은 후 장례식조차 지연되거나 아예 치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뉴욕시 브루클린 지역에서는 장의사 앞에 있는 냉동 트럭에서 시신이 썩는 냄새가 난다는 시민들의 불평이 잇따랐다. 장의사 앞에는 여러 대의 냉동 트럭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장의사는 병원에서 이송된 시신들을 보관하기 위해서 냉동 트럭을 대여했다. 그러나 장의사가 시신을 보관할 수 있는 법정기간은 15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특히 뉴욕시에 있는 장의사들은 시간에 맞춰서 하루에 여러 번 장례식을 치러야 할 정도 바쁘다고 한다.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은 죽은 자가 묘지에 묻히거나 화장을 하기까지 어렵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죽음, 차별적으로 발생한다
왜 이런 일이 2020년 미국에서 벌어졌을까? 왜 코로나19는 특히 뉴욕시와 흑인들과 라틴계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집중됐을까? 이것은 기본적으로 코로나19에 의한 죽음도 미국 사회의 불공평한 인종주의 속에서 차별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당파적 민간조사기관인 APM 조사연구소(ARL)가 미국 내 40개 주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5월 20일 기준), 코로나19에 의한 흑인 사망률은 백인보다 2.4배나 높으며, 아시아계와 중남미계에 비해서도 2.2배나 높다(관련 자료 : https://www.apmresearchlab.org/covid/deaths-by-race).
코로나19에 의한 사망자를 인종별로 보면 흑인들은 10만 명당 50.3명으로 가장 높지만 아시아계와 중남미계는 각각 22.7명과 22.9명으로 비슷했다. 백인은 20.7명으로 가장 낮았다. 미국 내 흑인 인구 비중은 13%이지만 코로나19에 의한 사망률은 전체 사망자의 25%에 이르고 있다.
5월 20일 기준 코로나19 사망자는 백인 3만9697명, 흑인 2만195명, 중남미계 1만3188명, 아시아계 3742명으로 집계됐다. 한편 대부분 주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조사는 미비한 점이 많지만, 애리조나주에서는 이들의 사망률이 다른 인종에 비해 5배나 높으며, 뉴멕시코주에서는 7배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코로나19 사망자들이 거주한 지역과 인종을 조사한 결과 이러한 죽음의 불공평은 명확해졌다. 우선 사망자는 가난한 지역에 거주하며 좁은 지역에 밀집해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대도시에는 고급 콘도들도 있지만, 빈곤 지역에 서민을 위한 아파트촌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뉴욕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지역은 물론 상대적으로 인구 집중도가 높다.
특히 중남미계 출신 이민자들은 월세나 모기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조부모부터 손주 세대까지 3대가 모여 살거나 룸메이트를 두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사는 아파트는 건물로 둘러싸여 바람도 잘 통하지 않기도 하고, 만성적인 쓰레기 방치로 인해 지저분하다. 방역에 취약하다.
흑인들은 특히 고혈압이나 심장병 등 기저 질환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좋은 병원과 약국은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의료시설 접근성이 부유층 지역보다 월등히 떨어진다.
빈곤층이 사는 지역에는 맥도널드나 KFC 등 패스트푸드 식당도 많다. 주민들은 기름에 튀긴 음식들을 많이 먹게 되고 식료품점에도 설탕과 인공조미료가 잔뜩 첨가된 가공식품들을 주로 접하게 된다. 신선한 육류와 채소와 과일을 파는 가게는 거의 없다. 시설이 좋고 아름답게 꾸민 공원도 거의 없고, 정부가 지원하는 공중시설도 부유층 지역보다 열악한 상황이다.
흑인과 중남미계 주민들은 건강보험 가입 비율도 백인에 비해 낮다. 또 언어나 문화적 격차로 인해 의료체계에 대한 장벽은 상대적으로 높다. 게다가 이들 소수인종은 안전도가 낮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소수인종은 병원 간호사나 외부 서비스 업종같이 감염 위험도가 높은 필수(essential) 업종 종사자가 많고, 질병에 따른 유급휴가와 같은 직장 내 의료 혜택이 상대적으로 적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확진자들의 거주지를 우편번호별로 정리한 자료가 많다. 그런 자료에 의하면 소수인종이 집중된 지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뉴욕시에서는 브루클린과 퀸즈 등 주로 중남미계 주민 거주지가 취약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