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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고시원 내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또다른 우진님을 만나면, 그를 살릴 수 있을까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④ 마지막 말을 경청할 수 있도록

“우진(가명)님 상처 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 아파요. 손대지 마세요.” “치료 잘하고 건강 찾아야죠.” “저도 그러고 싶어요.”

몇달 전 위기가정 돌봄 문제로 만난 서울의 한 동주민센터 공무원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가 진료를 의뢰한 이는 40대 중반 남성이었다. 당뇨 후유증으로 실명했고, 무릎과 골반 관절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원룸텔에 누워 있다고 했다. 피부 괴사도 진행 중이었다.

“○○병원에서 입원하던 중에 도망쳐 나왔대요. 처음엔 고시원으로 갔나 봐요. 예전에 활동지원사 하시던 분이 돈을 보태줘서 지금 원룸텔 보증금을 마련했어요. 가족은 없는 것 같고, 사람들한테 사기만 당하며 살았다고 해요. 반지하, 고시원을 전전하다 병원에 입원한 거였는데, 죽어도 병원에 안 가겠다고 해요.”

우진님을 돌보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쉴 새 없이 알려줬다. 우진님을 위해 보증금을 마련했다는 이전 활동지원사의 이야기는 동화처럼 들린다. 이번 활동지원사도 딱한 사정 때문인지 적극적이다. 병원에 가면 분명 나아질 텐데, 왜 그렇게 병원에 가기 싫은지 의아했다. 병원은 그에게 어떤 모멸감을 주었을까?

방문진료 의사로서 웬만하면 집에서 치료하려 한다. 하지만 우진님의 상태는 심각했다. 피부는 썩어가고 관절 구축(가동범위 제한)으로 인한 통증도 심했다. 상처를 확인하려 했지만 온몸이 아프다며 꿈쩍도 안 하려 했다. 게다가 대소변을 지린 채로 지낸 지 오래인데다 영양상태도 불량했다. 이튿날 동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119에 연락해 입원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집중 치료 뒤 우리 쪽이 치료를 이어가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119에서 입원을 권유했지만 본인이 거부해 결국 병원에 가지 못했어요. 본인이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고 한시간이나 버텨서 결국 포기했어요. 선생님이 찾아와주세요. 부탁합니다.”

결국 우리밖에 없었다. 함께 일하는 간호사 두분, 다른 의사 그리고 나까지 네명의 의료진이 우진님 집을 찾았다. 활동지원사와 힘을 합쳐 상처를 드러냈다. 의료진은 몸통, 골반, 발목 등을 분담해 상처를 소독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우진님에게 응원의 말을 계속 건넸다.

“괜찮죠? 참을 만하죠? 너무 잘하고 계세요. 그래도 소독하니까 시원하시죠. 이제부터는 저희가 꾸준히 와서 상처를 치료할게요. 약도 드릴 테니 꼭 드세요. 함께 잘 회복해봐요.”

상처를 소독하고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했다. 이가 없으니 유동식으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도록 했다. 방문진료의 경험만큼은 자부하는 우리 팀도 이번에는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도 활동지원사는 우진님을 치료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우진님을 의뢰했던 공무원은 나에게 소견서를 써주면 구 예산 지원을 해보겠다고 했다. 모두가 우진님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얼핏 스쳤다.

“선생님, 우진이가 죽은 거 같아요. 숨을 안 쉬어요.”

전화기 너머 활동지원사가 울고 있었다. 상처를 소독한 지 이틀 지난 이른 아침이었다. 급히 간단한 물품을 챙겨 나섰다. 우진님은 눈을 감지 못한 채 마지막 숨을 뱉으려 하고 있었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119가 도착했다. 마지막 숨을 찾기 위해 전기심장충격기를 작동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이 왔고, 간단한 조사를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며칠 전 병원에 입원했다면… 우리가 조금 더 빨리 우진님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가 생을 마감한 것은 숨을 거둔 지금일까, 사람들로 버림받은 그때부터일까? 시력을 잃고 살이 썩어가고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하는 회복 불능의 상태라 여기서 생을 마감하신 것이 잘된 것이 아닐까 하는 나쁜 마음도 들었다. 네명의 의료인이 그 순간 성심껏 처치했으니 할 만큼 한 것 아니냐는 찰나의 위로는 죽음을 직감하고 더 빨리 찾아갔어야 했다는 긴 자책으로 덮여버렸다. 또 다른 우진님을 만났을 때 나는 그를 살릴 수 있을까? 죽음보다는 힘겹기만 했다던 그의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 아프다. 죽음이 그에게 깊은 안식이 되길 기도한다. 어떤 만남도 마지막 만남일 수 있을 터, 조금 더 따뜻하게 마지막 말들을 경청해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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