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가 아닌 '연대': 트랜스젠더 혐오를 넘어 '여성 공간' 상상하기
[좌담회] 더 멀리 나아가는 페미니즘
by 김진서(starryletter)지난 2월, 숙명여대에 트랜스젠더 학생이 합격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후 학내·외의 트랜스젠더 혐오 공격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그녀는 등록을 포기했다. 이 사건을 겪으며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가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즉 여성 공간과 여성 인권을 사수하겠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이후의 과제를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5월 15일 <더 멀리 나아가는 페미니즘> 좌담회에 모인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한국성폭력상담소, 여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유니브페미 활동가들이 이 사건을 둘러싼 맥락을 분석하고 이후의 과제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로 인해 행사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활동가들은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을 향한 혐오 여론이 쏟아지고 입학 취소를 결정한 사건 이후에 지금까지 어떤 고민들을 가지고 지내 오셨는지 궁금하다.
태린 (여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 "당시에 숙명여대의 학생 소수자 인권 위원회에 소속이 되어 있었다. 입학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지지성명을 발표를 했고, 그 때 당사자 분께서는 사실 평범하게 그냥 대학 생활 하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학내에서 트랜스 혐오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서 입학 취소를 결정하셨다. 그 이후에는 사실 지금도, 미래에도 숙명여대에 트랜스젠더 학생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문화를 만들 것인지 계속 논의하고 있다."
앎 (한국성폭력상담소) : "사건 당시에 상담소는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가 성폭력에 대한 공포를 근거로 합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꼈다. 사건이랑 별개로 상담소가 그냥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문제의식은 피해자의 성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매년 상담 통계를 내보낼 때 90~94%% 정도가 여성, 5~6% 정도가 남성, 나머지는 미상인 경우가 많은데, 이 성별은 직접 묻기보다는 목소리나 '딸', '아내' 같은 단어 사용으로 판단한다.
즉, 그중에 분명히 트랜스젠더나 성소수자가 있을 텐데 그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를 하지 못한 채 마치 피해자가 모두 시스젠더 지정성별 여성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있다. 특히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같은 경우에는 숙식을 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트랜스여성 피해자가 들어오기 힘들고 소위 말하는 지정성별 여성만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 문제는 상담소에서만 혐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넘어 회원 분들, 참여자 분들과의 소통을 통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회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너무 바닥이고 그것을 사람들이 이미 내면화했기 때문에 그 변화를 상담소에서만 만드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서영 (유니브페미) :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더 활발한 논의가 앞으로 펼쳐질 필요가 있고, 그 논의의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기대했는데, 코로나가 막 확산되는 시기랑 맞물리면서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다. 그 이후에도 대학 안에서 어떤 논의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던 와중에 인천대와 감리교신학대에서 미투운동으로 쫓겨났던 가해 교수들이 복귀한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그래서 n번방은 물론이고 미투도 끝나지 않았고, 우리 사회에 성폭력을 낳는 사회구조적인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 최근 클럽 집단 감염과 관련해서 성소수자 인권침해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어떤 클럽인지 명시하지 않으면 또 여자들만 욕먹는다'는 이야기가 공감을 얻는 것을 보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 사이에서의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오늘이 그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 "셰어는 계속해서 낙태죄에 대한 쟁점들 중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 가능한 몸, 재생산을 해야만 하는 몸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이성애 중심주의와 성별 이분법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통제를 해왔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성과 재생산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이와 관련해서 '몸'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가 중요할 것이다.
사실 바디 디스포리아는 트랜스젠더만 겪는 것이 아니고 여성들 사이에서도 질병과 호르몬, 나이듦으로 인한 자신의 몸의 경험에 의해 겪기도 하는데, 무 자르듯이 트랜스젠더와 '생물학적' 여성의 경험을 분리할 수 없을뿐더러 그것을 같이 다룰 수 있어야 여성의 몸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재생산 건강에 대한 담론도 다른 방향으로 가지고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트랜스젠더가 '인위적으로 몸을 바꾸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의학 권력에 힘을 실어주는 데 기여한다'는 비난이 있는데 그것은 임신 중지나 피임을 하는 여성들에게 쏟아졌던 비난과 유사하다. 따라서 기술에 관한 접근 방식과 권력의 장을 바꾸기 위해서도 사실은 트랜스젠더 이슈가 주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셰어에서는 트랜스 진료를 현재의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병원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성과 재생산 기본법이나 포괄적 성교육을 통해 이러한 새로운 관점을 포괄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 이번 사건에서 트랜스혐오가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맥락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서영: "이번 사건 직후에 있었던 숙명여대나 여대에 재학 중인 사람들을 향한 일반화와 무조건적 비난은 기존에 여대를 숭배했거나 대상화했던 혐오적인 시선에 불과하고 따라서 같이 싸워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번 사건이 분명하게 학내 구성원들의 반대 움직임이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입학을 취소시킨 사건이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지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공학 대학에 다니면서 총여학생회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입증해야 할 때 친구들과 나눴던 고민이 떠올랐다. 총여학생회를 폐지시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여전히 학교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말로는 결코 설득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우리 학교에서 얼마나 많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지, 이것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체계나 기구가 얼마나 전무한지를 계속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총여학생회를 성폭력 전담기구로 만들고자 했던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만 강조해야 했던 상황들이 어쩌면 여성운동이 이어져오는 과정 속에서도 계속되었을까, 싶었다. 이런 맥락에서 반폭력 운동을 반차별 운동과 연결 지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반폭력 운동을 회피하고 가볍게 여긴다는 비난이 돌아오고 있다는 지점이 고민이다. 사실은 페미니즘 자체가 서로 다른 운동의 위계를 나누는 것에 반대하면서 등장했는데, 이제는 그 페미니즘 안에서 위계를 작동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사실은 위계를 나눌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보여주는 활동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앎: "상담소는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프로그램, 밤길 되찾기 시위, 달빛시위 등을 통해 여성만을 보호하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공적 공간이 여성에게 안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책이나 정책들이 단순히 여성을 분리시켜서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한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성 안심 귀갓길, 여성 안심 스카우트, 여성 안심 택배까지, '여성 안심' 제도만 너무 많다. 이렇게 성별 이분법적으로 진행되는 여러 성폭력 대응 정책들이 사람들에게 분리를 해야 안전하다는 인식을 줬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너무나 많은 혐오가 수행되는 상황에서, MTF 트랜스젠더를 여성으로 인정하라는 주장만으로는 결국은 성별을 분리하는 것에 휘둘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남성과 여성을 나누고, 트랜스젠더와 여성을 나누는 이 구조에 휘말리지 말고 더 넓은 차원에서 성별 이분법과 분리의 방식에 대해서 더 문제제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태린: "이번 사건으로 단순히 인터넷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트랜스혐오가 더 넓은 공론장으로 나오게 된 일종의 계기가 되었다. 세대적 특성이나 사회 분위기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인권을 '파이 싸움'으로 생각하고 '나 먹고 살기 바쁜데 남 챙길 여유가 어디 있냐'는 사고가 요즘 10~30대를 관통하고 있다.
이 상황 속에서 운동의 영역을 확장하고, 깊게 사유하고, 어떻게 연대할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배제하고 혐오하는 게 빠르고 쉽다보니 일종의 운동 방식으로 정착이 된 것 같다. 또, 여성혐오자들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숙명여대 학생이라는 이름을 걸고 한 인터뷰가 공개되면 항상 댓글에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이상한 분들만 계시는 줄 알았는데 이런 정상적인 분들도 있네요' 같은 말이 달렸다. 그런 걸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영: "'트랜스젠더는 잠재적 가해자, 다른 여성들은 잠재적 피해자'로 전제되는 구도 속에서 트랜스젠더의 입장을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구도만 자꾸 만들어지는 상황을 바꿔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트랜스젠더 운동의 긴 역사 안에서 정체성을 설명하는 방식, 사회에 요구하는 내용 등에 대한 논의들이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페미니스트와 논쟁해온 역사가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실 그런 결들이 잘 드러나지 못했던 것 같다. 따라서 여기에 트랜스젠더 운동 단체들과 트랜스젠더 주체들이 논의의 파트너로서 들어올 수 있는 조건과 공간을 만들어낸다면 보다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젠더라는 것을 한국 사회에서 다뤄 온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젠더 메인스트리밍'이 '양성평등'으로 협소하게 이해되면서 사실상 주요한 의제들이 구조로서의 젠더를 다루기 보다는 성별, 섹스를 다루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을 상기할 때, 젠더를 다룬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젠더에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단순히 어느 하나의 성별에 소속되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사실 그것을 넘어 나 자신과 나의 몸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 그러한 고민이나 실천들이 현재의 성별이분법 체계를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다 다양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은 본격적으로 젠더에 대한 담론, 그것이 정책이나 교육과정에서 이해되어온 방식을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앎: "사실 피해자가 사법 과정에 삼자구도로 들어간 것 자체가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피해자 변호사 제도 등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내온 과정들이 있다. 실제로 보장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아주 다양한 피해 상황 속에서 젠더 권력 관계뿐 아니라 다른 피해 서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한 방법도 계속되는 고민이다."
나영: "사법적인 판단을 하는 위치에서의 피해자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피해자를 설정해 온 방식이 어떤 특정 사건의 사법 현장에서의 피해자로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피해자로 포함시킬 수 있는 대상을 넓히는 것 이상이 이야기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스젠더 여성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여성도 피해자에 넣어주자'는 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구조는 사실 시스젠더 여성에 대한 것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 이 사건과 관련해 각자의 단체에서 어떤 요지의 입장을 내셨는지. 또, 당시에 '페미니스트가 왜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을 함께 해야 하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어떤 대답을 하실지.
앎: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었다. '자격 없는 여성'은 사회통념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 왔다. 어떤 여성이 피해자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검열하는 것에 맞서 한 사람의 서사와 맥락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피해가 되었는가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MTF 트랜스젠더가 "남성이었다가 여성이 되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절대 될 수 없다. 가해자일 뿐"이라는 태도가 얼마나 이분법적이고 성폭력 피해자를 단편적으로 인식하는지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이때까지 여성인권운동이 여성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은 결코 여성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또, 페미니스트로서 반성폭력 운동을 하고 있고, 반성폭력 운동의 다양한 맥락 속에 트랜스젠더도 있는 것이지, 여성 인권과 관련된 운동을 하다가 트랜스젠더 운동을 함께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로 분리된 것처럼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트랜스젠더 인권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 때 당연히 하는 것이다. 마치 '1+1=2'처럼 각각의 영역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좋겠다."
서영: "처음에는 여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드러난 이번 사건에 대한 태도가 공학에서 페미니스트를 향한 폭력적인 언행과 닮아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여대 커뮤니티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침입자'를 몰아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게시물을 쓰고, 해시태그 캠페인을 하는 모습이 총여학생회 폐지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유사하게 보였다. 분명히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유사하게 발견되는 지점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오랜 시간을 토론했다.
결론적으로, 공간에 따라 타자가 다르게 상정이 되는데, 그 공간들이 각각의 타자를 어떤 방식으로 소외시키고 있는지를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충분히 공평한 혹은 안전한 학교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누군가를 침입자로 설정하고 납작한 존재로 타자화하는 부분을 지적했다. 그렇게 당신도, 그 누구의 상황도 납작한 텍스트 속에 가둬질 수 없기 때문에 울타리 밖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입장을 쓰는 과정에서 유니브페미 강령을 찾아봤는데, '여성 혐오와 성소수자 혐오는 인위적으로 구상된 규범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공모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차별과 폭력은 규범이 오작동해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이미 규범 자체에 내재해 있다'는 구절이 있었다. 이것을 입장을 통해 폭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환영하는 페미니스트라고 쓸 수밖에 없었고, 그 문장을 쓰는 게 우리의 당연한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영: "운동이 자꾸 누구를 챙기고, 누구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여성을 지금껏 구제, 보호, 통제의 대상으로만 다루어왔던 구도를 넘어서 누구를 챙길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바꿀 것인지 고민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교차성이 단순히 여성이라는 전제 위에서 장애 여성, 이주민 여성, 난민 여성 등 각각의 여성이 어떤 피해를 당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챙길 것인지'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여성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누구를 '챙길' 것인지 선별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는데, 여성들이 구조를 같이 바꾸는 주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구제와 보호의 대상으로 남아있게 만드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태린: "숙명여대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는 '시대의 요청에 응답할 것인가, 혐오에 편에 설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논평을 썼다. 학교 안에서 트랜스혐오 세력의 요지가 두 가지로 정리되는데, 안전 문제와 여대의 설립 이념이다. 우리 학교의 설립 이념이 여자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 여대의 역할은 무엇인지 질문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성이라는 소수자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지만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소수자에게도 자리를 열어주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여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이하 '여페넷')라는 단체에서 '다시 경계를 넘어서 전진하라', '페미니즘은 언제나 정상이 아닌 여성들과 함께해왔다'라는 두 개의 논평도 발표했다. 사실 이전에는 여대 내에서도 차별과 혐오가 존재한다는 게 가시화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외부에서의 여성혐오와 여대 대상화와 싸우기 바빴기 때문에 여대 안에 있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는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두 개의 입장문을 통해서 여대에 존재하는 혐오를 고발하고 여대 내의 구성원들에게 이 경계를 넘어서 전진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여성운동이 여성공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했던 장면들이 있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총여학생회 폐지 이후 여학생 휴게실이 사라지는 것에 맞서 싸우기도 했는데, '여성 공간'이라는 게 무엇이며 '여성 공간'을 지킨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전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서영: "'여성공간 사수'라는 단어를 여성을 떨고 있는 토끼로 묘사하는 포스터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여성 공간을 지킨다고 했을 때, '무엇으로부터 지킨다는 것인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하는데, 학교에서의 활동 경험을 떠올렸을 때 그것이 꼭 남성만은 아니었다. 여성공간 사수의 과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떤 사람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는 그 사람과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고, 내 안의 여성 동질성이 파괴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여성공간은 과연 무엇인가 질문하게 되곤 했다. 돌이켜보면, 총여학생회실이나 여학생휴게실 같은 물리적 공간 이상으로 차별적인 대학 안에서의 페미니즘의 입지, 대안적 세력으로서의 입지를 지키고자 싸웠던 것 같다. 그래서 물러설 수 없고, 여성주의적인 문화를 남겨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이 공간이 필요하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지킨다'라는 술어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데, 무엇을 무엇으로부터 지키는지,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지킬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나영: "여성뿐 아니라 많은 소수자들이 자기만의 공간과 커뮤니티를 많이 만들어왔는데, 이중적인 모순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커뮤니티들은 외부로부터 안전하고 자유가 보장되는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부로부터 고립되기도 쉽다. 여학생 휴게실이나 총여학생회에 대한 논쟁도 꽤 오래 되었는데, 그 논쟁이 단순히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라는 구도로만 다루어졌던 것이 한계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여학생 휴게실은 대부분의 공간에서 남학생들만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다른 필요를 포괄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고, 총여학생회 역시 학생운동에서조차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질서가 장악하는 환경에서 다른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만 올 수 있는 공간이냐'의 문제보다는 '어떠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자 만들어진 것인지', '어떻게 주류의 질서와는 다른 정치적 목소리를 낼 것인지'의 문제다. 결국 안전한 공간은 어떤 집단만 모여 있을 때 만들어지는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가 발화되고 자유롭고 평등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린: "사실 여자대학이라고 하면 내외부에서 여성만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고 상상되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이 여실하게 드러난 것 같다. 여대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여성'들만의 공간이 아니었고, 모두가 똑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폭력과 혐오가 없다는 것은 오히려 여성혐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학내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이라고 여긴다.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거야. 여자는 원래 착하니까.'라는 것이 그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정체성이 존중받으며 정치적 입장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안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앎: "여성의 권리가 너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어서 권리를 요구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것이 '여성공간'이라는 상징으로 드러났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간 자체보다 우리가 그 공간을 통해서 지키고자 했던 권리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 권리가 마치 공간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고 삭제된 채로 누가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주체인지 그 자격의 유무만 따지게 될 때 그저 분리만 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사건을 '혐오에 반대한다'는 맥락을 넘어서 어떤 논의로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관련된 활동 계획이 있다면 알려달라.
태린 : "숙명여대 안에서 트랜스혐오에 반대하던 구성원들에게 '(학교의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을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이번 토론회처럼 혐오가 나쁘다는 말을 넘어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안전, 공간, 차별 등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논의해볼 시점인 것 같다. 향후에는 여페넷에서 23일 <여성 공간의 안전을 상상하기> 온라인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앎 : "차별이란 무엇인지, 여성이나 성소수자만의 일인지 고민하게 함으로써 차별이 어떤 구조에서 기인했고, 어떤 점이 변해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피해자를 전형적으로 재현하고, 여성 공간의 안전을 맹신하는 것 아래에 있는 사회적 구조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 구조에 눈을 돌리는 작업들을 시작으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서영 : "유니브페미는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의 혐오표현에 대응하는 F5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했다. 이걸 시작으로 대학이나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조건에서 혐오 방지가 당연하려면 어떤 선제 조치들이 필요한지 고민들을 나누고 싶다. 또한 반차별과 반폭력의 연결고리를 많이 부각하고 싶다. 차별금지법이나 차별금지 선언/강령/규정 등이 단순히 무언가를 금지하는 것을 넘어 더 많은걸 포함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영 : "'우리 집에 왜왔니' 놀이를 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하나의 선을 긋고 주거니 받거니 하기 보다는 고민할 수 있는 장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낙태죄 폐지 운동에서 생명권 vs 낙태권의 대립 구도를 벗어나 국가의 문제를 얘기하고, 여성의 처벌이 아닌 사회의 공적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처럼, 트랜스젠더에 관한 논의도 여성이냐, 아니냐를 넘어 이 장을 바꿀 수 있는 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셰어는 의료나 정책 영역에서 단지 시스젠더, 트랜스젠더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고정된 인식으로만 다루어 온 몸을 다르게, 다양하게 다룰 수 있는 방식들을 제안하고 고민하는 얘기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성 건강 등을 이야기할 때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단순히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조건 속에서 각자가 경험하는 위치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현실적인 의료 환경과 법, 정책 영역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지난해, 유니브페미에서 진행했던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43개 성평등 제도 현황 조사에서 숙명여대는 유일하게 학칙에 차별금지조항이 있는 학교였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 있어 학교 차원의 대응은 전무했고, 학교 안팎의 페미니스트 개인과 단체가 입장을 내고 논쟁을 해야만 했다. 혐오에 맞서는 것을 단순히 개인의 몫으로 돌리지 않고, 혐오의 시대에 학교나 직장, 기업 같은 공동체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되물을 필요가 있다.
진행 : 윤김진서(유니브페미)
패널 :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앎(한국성폭력상담소), 노서영(유니브페미), 태린(여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녹취 및 속기 : 윤원정, 설목, 현은진, 오은비(유니브페미)
정리 : 윤김진서(유니브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