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 우리가 찾을지도 모른다
5월 25일은 '세계 실종아동의 날'... 아이 하나 찾는 데는 사회 전체가 필요하다
by 김수진(jinijota75)마트에서 아들이 사라진 적이 있다. 남편과 사과를 골라 담고 뒤를 돌았는데 아들이 없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아들이 보이지 않은 고작 몇 분의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영화 <나를 찾아줘>에는 그 '영원'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을 6년이나 견디고 있는 부모가 나온다. 생업도 포기한 채 아이를 찾아헤매는 아빠 박해준, 일상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혼자일 때면 슬픔과 공허함으로 가득한 눈빛을 하는 엄마 이영애가 있다. 그저 영화 속 이야기면 좋으련만 두 배우가 절절히 연기해 낸 실종아동의 부모는 현실에 너무나 많다. 수년, 수십 년이 흘러도 '나를 찾아줘' 어디선가 외치고 있을 아이를 포기할 수 없는, 포기는커녕 마음 한구석에 밀어둘 수도 없는 부모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2만 명 가까이 발생한다는 실종아동, 그 중 99% 가량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머지 1%는 '장기실종 아동'이 되어버리고 만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9월말 기준 장기실종 아동은 1년 이상 10년 미만의 실종아동 34명, 10년 이상 20년 미만 59명, 20년 이상 486명이다.
다른 실종사건과 마찬가지로 아동실종 사건도 골든타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종 직후 2~3시간이라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실종이 장기화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12시간 후에는 못 찾을 확률이 58%, 1주일 뒤에는 무려 89%까지 높아진다.
골든타임 놓치지 않는 법
2005년 실종아동법이 제정된 이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 대거 도입되었다. 우선 '지문 등 사전 등록제'가 있다. 지문과 사진, 신상정보 등을 사전에 등록해 놓는 제도인데 도입 후 실종자 발생이 2011년 4만 2169건에서 2016년 3만 8281 건으로 9.2% 감소했으며, 지문이 등록된 아동의 경우 보호자 인계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이내였다.
'코드아담'은 놀이공원이나 마트 같은 다중이용시설에서 미아 발생신고가 접수될 경우 즉시 안내방송과 경보를 발령하고 출입구를 봉쇄한 채 집중 수색을 벌여 10분 내에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7월부터 '코드아담' 제도가 시행됐지만 여전히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중이용시설측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아이를 잃어버릴 경우 바로 '코드아담'을 요청할 수 있음을 미리 숙지하고 있는 것이 좋다.
'앰버 경고'는 실종된 어린이의 인상 착의 등 관련 정보를 매체, 전광판, 휴대폰 등에 공개해 일반인들의 제보를 독려하는 시스템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4월 최초로 앰버 경보가 발령되었다. 미국에서는 1996년 처음 시행 이해 2017년 2월까지 868명의 납치된 어린이들을 구출하는 데 기여했을 정도로 효과가 높다.
장기실종의 경우 유전자 분석 방법이 큰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1967년 미국으로 입양됐던 딸이 부모님을 찾은 이야기, 프랑스로 입양됐던 남매가 성인이 되어 어머니와 상봉한 이야기가 한때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얼굴 나이 변환기술'을 통해 세월이 흘러 변했을 아이의 모습을 시각화하는 방법도 도입되었다.
실종아동 사건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져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나를 찾아줘> 김승우 감독도 작년 12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종 아동(문제 해결)에 필요한 건 주변의 관심들이라는 거다. 실종아동 전단지를 볼 때 혹은 우리 사회 문제들을 볼 때 내가 감상하는 태도로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생각하면 힘드니까. 잃어버린 아이들의 얼굴이라도 한 번 제 마음 속에 담지를 않았구나 싶었다. (영화를 통해) 관심과 무관심의 한 끗 차이를 얘기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가 한 발짝만 더 (노력)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달라졌으면 좋겠다.
- '나를 찾아줘' 감독 "아동학대 장면, 안 보여주려 했지만" (http://omn.kr/1lupi)
실종아동 문제는 전단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아닌,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김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소속 실종아동전문기관 소장에 따르면 극도의 슬픔과 죄책감으로 인한 부모들의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족 간 갈등 심화로 이어지고 결국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 아이를 찾는 일이 장기화 하면서 생업을 잃고 가정 경제의 붕괴를 겪기도 한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가 지적하듯 장기실종 아동 문제는 범죄 연관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실종아동 사건은 해당 가족이나 몇몇 기관에만 일임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실제로 단체나 기업들이 '실종아동 찾기'에 적극 동참한 모범사례들이 있다.
일반인의 협조
2월 5일자 <뉴데일리 경제>에는 'NS홈쇼핑 카탈로그로 22년 전 실종된 8살 아동 '가족' 찾아'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매월 정기발행되는 NS 쇼핑북에는 2017년 10월부터 실종된 아동들의 정보가 게재되고 있다. 정기발행 부수 65만 부로 카탈로그 업계 1위라는 영향력을 선하게 이용하는 사례다. 지난 2월부터는 실종아동전문기관의 협조를 받아 실종아동의 '현재 추정 모습'까지 함께 게시하고 있어 더 큰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프로야구팀 SK 와이번스는 2016년 실종아동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해 실종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이듬해 시즌에는 '홈으로 달려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DNA 검사'라며 실종아동이라 생각되는 본인이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 DNA 대조를 통해 부모를 찾는 방법(실제 이 방법을 통해 52년 만에 가족을 상봉한 사례가 있다)을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2016년 크라운과자는 '희망과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450만 개의 '죠리퐁'에 실종아동의 정보를 실은 것. 그 결과 50년간 만나지 못한 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지는 결실을 봤고 이후 규모와 방법을 확대해 희망과자의 수를 1200만 개로 늘렸다.
페이스북은 2015년 7월 경찰청과 협력해 '페이스북 앰버경보'를 국내에 도입한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실종아동 발생시 약 100km 내에 있는 일부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뉴스피드에 실종아동의 신상명세 및 사건 관련 정보가 표시되는 것이다. 정보를 조회해 곧바로 페이스북 친구들과 공유해서 빠른 시간 내에 널리 퍼나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체나 기업 뿐 아니라 인지도 높은 연예인과 공인들도 자신이 지닌 영향력을 '실종아동 찾기'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가수 이효리씨가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수제화 '아지오'를 신고 화보를 찍었는데 그 파장이 대단했다. 아지오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르고 아지오 홈페이지는 접속 폭주로 마비될 지경이 됐다. 이같은 파급력을 지닌 유명인사들의 참여가 '실종아동 찾기' 분야에서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실종아동을 찾는 일은 일반인들의 협조가 특히나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이다. 코드아담, 앰버경보, 포털사이트의 배너나 SNS 등을 이용해 실종아동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 모두가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보태려는 노력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을 '아이 하나를 찾는 데는 사회 전체가 필요하다'로 바꾸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찮아보이는 정보라도 그것이 잃어버린 퍼즐조각이 되어 실종아동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스치듯 본 장면, 누군가의 기억 속 작은 정보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제도나 과학기술 못지않게 일반인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수십, 수백만 개의 눈이 잃어버린 한 아이를 찾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결과는 놀라울 만큼 달라질 수 있다.
5월 25일은 '세계 실종아동의 날'이다. 부모 손잡고 나들이 떠난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는 어린이날, 그 20일 후에는 아이의 사진을 하염없이 쓰다듬는 부모들의 통곡 가득한 '실종아동의 날'이 있다. 어디 이날 하루 뿐이겠는가.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말한다. 지금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고, 뼈가 녹는 심정이라고,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고.
현수막이나 전단 속 실종아동의 얼굴을 머릿속에 새기자. SNS 속 실종아동의 정보를 어미새 마냥 부지런히 퍼나르자. 혹여 아이가 찾아올까 평생 이사도 못가고 하루를 기다림으로 채우는 이들. 그들의 잃어버린 아이를, 그날에 멈추어버린 시간을, 우리가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