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 열흘 예정 출장 갔는데... 50일 만에 귀국했다
[마초의 잡설 2.0] 국회의원 선거도 못하고... 하지만 새롭고 생각 많게 하는 경험들
by 조마초(machobat)내가 유일한 한국 대표라 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려됐지만, 인천 발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는 떴다. 두 번이나 체온 검사를 받고 탄 40여 명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나 2월 말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과 시내엔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더 많았다. 며칠 후부턴 나도 마스크를 벗었다. 그런데 열흘쯤 지나자 시내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약국 앞엔 '마스크 매진' 공고와 마스크를 사려는 긴 줄이 여기저기 보였다.
귀국 전날, 한국, 중국, 이탈리아, 이란 등 국제선 노선을 잠시 중단한다는 항공사 이메일이 왔지만, 곧 재개될 거라 했다. 가짜뉴스가 돌고 시내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맘 좋은 친구의 새 콘도에서 며칠간 묶기로 했다. 단지 내에 상점, 식당과 대형마트 등이 있어 편했다. 친구들이 찾아와 음식과 옷까지 챙겨 줬다. 다음 주 비행기가 다시 뜨면 집에 갈 수 있겠지. 그런데, 내 미소는 딱 거기까지였다.
발이 묶였다
이틀 후,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이동제한령(Movement Control Order, 아래 MCO) 1단계를 발표했다. 모든 사람은 2주간 생필품 구매, 병원 진료 등을 제외한 야외활동과 2인 이상 단체 모임을 금지했다. 국경이 봉쇄됐고, 모든 국내 공항도 폐쇄됐다.
관공서, 회사, 공공시설, 공원 등 휴게시설도 문 닫았다. 거주지에서 10km 이상 이동 시 허가증이 필요했다. 모든 식당 등은 배달만 가능해 도로엔 음식 배달용 오토바이만 간간이 오간다. 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검문하고, MCO 위반자들을 체포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거래처 등에 현지 상황을 알렸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다. 말레이시아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3천 명을 넘었다. 현지 돈, 신용카드와 한국 돈 등 돈 걱정은 없었다. 손 세정제와 마스크도 넉넉했다. 그러나 지인들과는 전화와 SNS로만 연결됐다. 난생 처음 생각지 못한 어색한 현실이 내 앞에 있다.
마트도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만 영업하니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렸다. 경비원들은 사람들을 1m 간격으로 줄 세워 체온을 잰 후, 손에 소독제를 뿌려, 매장에서 나온 인원수만큼만 들여보냈다. 쌀, 빵, 식용유, 달걀, 국수 등 대부분 먹거리는 불안정한 공급에 수요가 앞서니 자주 동났다. 나도 괜스레 불안해졌다.
콘도는 다 좋은데 빈 집이라 인터넷 연결이 안 됐다. 말레이시아보다 1시간 빠른 한국에 맞춰 일과를 계획했다. 새벽부터 와이파이가 되는 3층 상가로 내려가 이메일, SNS 등을 확인하고, 뉴스를 보고, 모든 걸 단지 내에서만 하는 단순한 생활이 이어졌다.
상가에서 시간을 보내니 경비원, 직원 등과 친구가 됐다. 그 덕에 매일 체온을 재고, 마트에선 원하는 품목을 일찍 사고 지역 정보도 얻었다. 매일 근처를 산책하다 보니 인사하는 얼굴들이 늘어갔다.
식료품과 생필품 구매 등으로 두꺼워지는 영수증 봉투와 반대로 지갑은 얇아져갔다. 항공권 사이트에 뜬 인천행 직항, 동남아 등 경유 비행편은 비싼 요금에 보험증서, 병원진단서 지참 등 현실성이 없었다. 귀국해도 2주간 격리 중에 선거는 할 수 있겠지, 위로했다.
4월 1일, MCO를 2주 더 연장한다는 소식에 설마 했던 기대가 무너졌다. 얼마 전까지 사전 선거를 생각했던 게 사치였다. 숨이 탁 막히고 미칠 것만 같아 하루에도 몇 번씩 칫솔질을 하고, 샤워하고, 세탁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가구를 옮기며 시간을 보냈다.
특별기가 뜬단다
생업을 잃고 소득이 막혔고 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만, 현지 주민들 대부분은 MCO 연장을 찬성했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귀국길이 막힌 큰 절망감에 친구들이 보낸 농담 댓글과 문자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짜증이 났다.
투표 기회는 물 건너갔다. 심란하니 잠도 안 오고 안정이 안 됐다. 가만히 있으면 속상하고 불안해 안절부절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으로 전화해 어머니 목소릴 들으면 곧 마음이 차분해졌다.
혹시나 해 한국대사관에 연락했다. 대사관과 교민회의 노력 덕에 특별기가 뜬단다. 잽싸게 온라인으로 항공권을 사는 몇 분이 몇 시간 같았다. 세 배 이상 비싼 요금이지만 대안이 없었다. 세 번째 MCO가 발표된 새벽 날이 밝았다. 그날 한국은 선거일이었다.
5주 만에 갑자기 바빠졌다. 친구들도 같이 기뻐해 줬다. 정이 든 마트 사람들과 경비원들의 작별 인사를 뒤로 택시는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것들이 시원섭섭했다.
군경 검문 후 공항까지 자동차가 없는 유령도로였다. 썰렁한 공항엔 경찰 몇만 보인다. 시간이 되자 적막감이 든 넓은 공항에 어디선가 주섬주섬 직원들과 한국인들이 모여들었다. 50일 만에 우리말을 직접 들었고, 좌석이 다 찼다.
50일 만에 귀국 후 자가격리까지... 처음 생각해본 일들
6시간 반을 비행해 아침 7시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방역복의 군경 요원들은 일사불란하고 친절하고 능숙하게 우릴 안내하고 검사하고 통제했다. 난 같은 방향인 타 귀국자들과 공항버스로 담당 구청보건소에서 상담, 진단검사 후 구청 차량으로 집에 왔다.
집엔 자가격리를 위해 준비한 식료품, 친구들이 보내준 음식과 술이 넉넉했다. 구청에서 세정제, 로션, 온도계, 마스크, 안내문 세트도 주었고, 전화로 증상 등을 수시로 확인했다. 보건소에서 '진단검사 결과 음성'이란 문자가 왔다.
주민센터에선 현금 10만 원 또는 금액 상당 생필품 중 선택하란다. 매일 2차례 체온 등 건강 상태를 스스로 진단해 자가진단앱을 통해 담당 공무원에게 보냈다. 입국자 주의사항과 자가격리대상자 생활수칙을 잘 따랐다. 15일 후, '격리 해제' 보건소 문자를 받았다.
21대 국회의원선거를 못해 아쉬웠지만, 한편으론 분명히 새롭고 생각 많게 하는 경험들이었다. 지구, 생태계, 팬데믹, 친구, 대사관과 해외교민회, 군경민방역요원들, 공무원, 중앙방역대책본부, 대통령, 그리고 정부와 국가.
세계는 한국이 이동통제 없이 잘 대처하고 빠르게 진단 및 완치하는 모범국가라고 칭찬한다. 우리가 그동안 못 느꼈지, 대한민국은 겸손하지만 어느덧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자랑스러워 할 가치 있는 나라가 됐다.
돌이켜보니 열흘 출장이 예정에 없던 '말레이시아에서 50일 살기'가 됐다. 현재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서 471만여 명 넘게 확진자가 나와 1/3이 완치됐고 31.5만 명 넘게 죽었다. 코로나19는 앞으로도 우리를 천천히 질기게 오랫동안 깊숙이 물고 늘어질 것이다.
코로나19로 인간이 숨을 죽이자 지구 환경은 되살아나고 공기가 맑아졌다. 인간이 발전할수록 지구는 화복을 위해 일정 기간 이런 휴지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인간은 이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