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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도 밝힌 연등

연등 축제- 대면 그리고 비대면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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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느긋한 걸음걸이로 종로의 우정국 공원과 조계사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해마다 종로에서 열리는 연등축제를 위한 작품전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부 수작업인 동시에 공동작업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인하여 작업진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 시간과 인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예년보다 갯수도 적거니와 크기도 고만고만하다. 하지만 수고는 여느 해보다 많았을 것이다. 대작은 말할 것도 없고 해마다 주목받던 업그레이드된 창작등은 더욱 귀하신 몸이 되었다. 그나마 일주문 앞에 아홉 마리 용이 아기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구룡토수(九龍吐水)’라고 제목을 단 신상품이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어쨋거나 늘 그래왔던 것처럼 주변여건이 수월할 때는 수월한대로 어려울 때는 어려운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연등회(燃燈會 중요무형문화재122호)는 고려 이후 면면히 전승된 천년전통이라는 시간적 무게감 때문에 해를 더할수록 볼거리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평상시’때 이야기다. 한반도에서 천년동안 오월이 어찌 눈이 부시게 푸르런 날만 있으랴. 잎 돋고 꽃피는 화려한 계절이지만 때로는 장마같은 굵은 소낙비가 내릴 때도 있고 또 태풍처럼 세찬 바람이 부는 ‘비상시’도 있기 마련이다. 설사 풍전등화(風前燈火)일지라도 수시로 심지를 돋우어가며 꺼지지 않도록 살폈고 우천시에는 한지로 만든 연등에 비옷를 입혀서라도 주어진 몫을 다했다.

즐거운 시절에는 흥겨움을 보태는 등불이지만 힘든 시기에는 위로를 주는 등불이 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초파일에 관등(觀燈)했다”했다는 기록을 『난중일기』에 남겼다. 전쟁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과 중압감 속에서도 연등을 바라보며 심리적으로 많은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승군(僧軍)들은 7년동안 전란에 참여하면서도 해마다 오월에는 틈틈이 밤마다 연꽃잎 모양 따라 종이를 비볐고 연등을 만들어 군진은 물론 남해바다를 은은하게 밝혀 조선수군은 물론 피난처 백성까지 위로했던 것이다. 그 후예들은 2020년 당신의 동상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 황룡사구층목탑을 본뜬 조형등을 세웠다. 신라 선덕여왕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어려운 당시 상황을 극복하려는 간절한 염원이 서린 탑을 재현한 것이다. 이제까지 만난 적이 없는 미증유의 전염병인 ‘코로나19’사태의 극복의지를 가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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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장군과 함께 왜적에 맞서 싸우는 승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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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慈悲)의 연등회는 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쁨을 함께 하는 자(慈)의 축제가 될 수도 있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비(悲)의 축제가 될 수도 있다. 2014년 세월호 시절에는 흰색추모등과 만장(挽章) 등으로 아픔을 국민과 함께 나누는 비(悲)의 연등회를 만들었다. 그 때의 소중한 경험을 올해 또 되짚는다. 당시 규모를 대폭 줄이고 대중정서를 충분하게 반영하면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만에 또 비상시기를 만났다. 이른 바 코로나 사태다. 강력한 코로나 창궐시기와 겹친 부처님오신날 기념행사를 4월30일(음력4월8일)에서 5월30일(윤달4월8일)로 연기했다. 동시에 오월 한달 동안 코로나 극복을 위한 기도를 이어갔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대세 속에서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어 종로거리를 가득 메우는 축제가 과연 가능할지 일을 진행하면서도 계속 반문의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그동안의 땀의 결과물인 대형 작품은 조계사 봉은사 마당과 청계천 광화문 광장 등 몇 군데 전시로 대치했다. 임란 와중에도 등불이 주는 위안이 필요했고 세월호 정국에도 우울감을 치유한 등불의 역할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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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이 암주로 있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세검정 옥천암에 연등이 걸린 야경

뒤로 미룰 수는 있지만 취소할 수는 없으며 규모를 줄이더라도 건너뛸 수는 없다는 사명감이 전승의 역사를 만드는 또다른 힘이다. 그래서 올해는 한 달이나 뒤로 미루었다. 하지만 거듭 심사숙고 끝에 국민안전을 위해 결국 취소를 결정했다. 동(動)적 축제를 정(靜)적 축제로 바꾼 것이다. 국난극복과 치유를 콘셉트로 정한 올해의 연등회는 행렬없이 자기가 머무는 자리에서 등불만 감상하는 ‘비대면 축제’라는 초유의 실험장이 될 것이다. 영상을 통해 거미줄같은 인드라망(인터넷)을 타고 그 등불은 오대양 육대주로 송출되면서 랜선형식의 ‘비대면의 대면’ 축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시기가 더욱 길어지고 아예 비대면이 일상화될까봐 여전히 걱정스럽기는 하다.

원철 스님( 옥천암 암주 &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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