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비핵화 동력…총선 전 한미 정상회담도 '난망'
by NEWSIS靑 외교안보라인 美→러시아 분주…한미회담 추진 가능성도
'남북협력' 文대통령 의지 확고…제재면제 협력 사업 구체화
뮌헨안보회의 제재 완화 여론전 '촉각'…美, 러 단속 움직임
전문가 "북미, 내부 정치 원심력 강화…협상 가능성 희박"
"文대통령, 조급함 대신 남북관계 근본적 새판 짜기 필요"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물밑 외교전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한국을 중심으로 미국·중국·러시아 등 주변국 외교안보 채널간 '정중동(靜中動)'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소멸 위기에 놓인 북미 비핵화 대화에 동력을 제공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구상이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대선 레이스를 시작한 미국과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 사이에 대내 정치상황이라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하노이 노딜' 시점과 비교해 큰 상황 변화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함께 제기된다.
14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현종 국가안보실장은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오는 1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이날 오후 모스크바를 떠나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앞서 김 차장은 알렉스 웡 미국 유엔 특별 정무 차석 대사 내정자와 함께 러시아를 방문했다.
김 차장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에 제출된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논의 상황을 파악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대북제재 완화에 제동을 걸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포착되자 어떤 흐름으로 전개되는지 동향을 살피러 러시아행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웡 내정자가 러시아 방문 직전 한국에서 남북관계 상황 등을 다루는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에 제재완화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전달한 뒤, 러시아로 날아가 국제사회 여론 확산을 단속하려는 수순을 밟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이날 "웡 내정자가 모스크바에서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 차관, 올렉 부르미스트로프 외교부 북핵담당특임대사 등 러시아 외무부 고위 인사들과 만나 한반도 상황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행동 방향을 조율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중러는 지난해 12월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차원의 결의안 초안 회람까지 마무리 된 상황이다.
웡 내정자가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러시아의 향후 입장을 정리해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전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뮌헨안보회의 기간 중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제재완화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심도 깊은 논의가 예상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한 출국에 앞서 폼페이오 장관과의 "기회가 있으면 현안을 좀 짚어보고 싶다"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한 지금 현황,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나눌 얘기가 많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날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들은 독일에서 개최되는 '뮌헨안보회의' 참가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며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지 확대를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NSC 상임위원회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지 확대를 노력하겠다고 한 것은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개연성이 있다"며 "한반도 주요국 외교장관이 모이는 안보회의에서 대통령의 의지를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신년사를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한 정면 돌파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교착 속에서 남북관계의 후퇴까지 염려된다"며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경우 북한에 대한 제재에 대해서 일부 면제나 예외조치를 인정하는 등의 국제적인 지지를 넓힐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며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2018년 10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프랑스 국빈방문을 계기로 '조건부 제재 완화론'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했지만, 미국 반대에 부딪혀 한미 워킹그룹이라는 남북관계 감시 틀 속에 갇혔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대화마저도 멈춰서면서 비핵화 협상 동력이 빠르게 식어갔다는 게 문 대통령의 문제 인식이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지난 1년간 남북협력에서 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 위에서 해석된다.
남북관계 타개를 위한 세부 방안으로 ▲남북 철도도로 연결 ▲남북 접경지역 협력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비무장지대(DMZ)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 ▲김정은 국무위원장 답방 등 5가지를 추진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구상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신년사를 생략한 점에 착안해 남북관계 회복을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판단한 데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을 향한 노골적인 불만이 없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타진할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 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이 실무를 맡아 구체적인 대북정책 방향을 발전시켜 왔고, 문 대통령의 신년사에 담기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구상은 NSC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유엔 대북제재 면제 조항을 활용해 추진할 수 있는 남북 협력사업 50개에 대한 리스트를 확정하고 외교부와 통일부 등 관련 부처간 공유까지 마치는 수준까지 구체화 됐다.
앞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최 비서관은 지난달 7일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 문 대통령의 올해 남북협력 사업 추진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로부터 한달 뒤인 이달 초 김현종 2차장의 미국 방문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입장을 전달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부정적 기류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방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정의용 실장과 김현종 차장의 거듭된 설득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통한 협의에서도 실마리가 안 보일 경우 한미 정상간 '톱다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대선 레이스를 뛰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빡빡한 일정과 4월 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적당한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3월 한미 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가는 총선용 행보라는 야당의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정무적 부담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는 외교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4월 총선이라는 국내 정치상황을 고려해 외교적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했다.
게다가 한미 간에는 이외에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 미사일 지침 개정, 복잡한 현안들이 얽히고 섥혀있는 데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비핵화 대화에 관심이 멀어진 상황이라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는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CNN은 10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고위 고문들에게 '11월 대선 전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또 다른 정상회담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현재 북미 협상라인이 다 무너진 상황인 데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 대화와 관련해서 현상 유지만을 바라고 있다"며 "미국도 북한도 자국내 정치적 상황이 워낙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올해 북미간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제와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내세워 상황을 돌파하겠다고 해서 지난해 1년 간 미국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남측의 모습에 등을 돌린 북한이 쉽게 호응할리도 만무하다"며 "조급함을 내려놓고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상호주의라는 관습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새판을 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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