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도 50㎝ 문으로” ‘코로나19’와 사투 음압병실 가보니…
by 고양=송혜미 기자12일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음압격리병동. 의료진은 3번(54)과 17번 환자(38)의 퇴원 준비로 분주했다. 이들의 마지막 식사가 준비됐다. 간호사가 일회용기에 담긴 음식을 들고 음압격리병상(음압병실) 앞에 섰다.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그 대신 출입문 옆 작은 문을 열었다. 가로세로 50cm 크기로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크기다. 식사나 생필품을 전달하는 ‘패스박스’다. 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치료제가 없는 감염병이 유행하면 환자를 신속히 격리해 추가 확산을 막는 게 중요하다. 음압병실이 그곳이다. 환자와 의료진이 함께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는 최전선이다. 특히 의료진에는 찰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환자의 비말(침방울), 객담(가래) 등을 통해 의료진의 몸속으로 침투할 수도 있다. 방호복에 바이러스를 묻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환자 28명이 발생하면서 음압병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음압병실은 어떤 구조이고, 어떻게 치료가 진행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직 환자가 입원하지 않은 격리병동 한 곳을 살펴봤다.
● 7종 방호장비에 5중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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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병실과 달리 음압병실에서는 격리병동 밖 간호 스테이션에서 환자 상태를 살핀다. 모니터에는 병실, 음압복도 등 각 구역의 온도 습도 기압 등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격리병동은 외부보다 기압이 낮다. 병동 안 기압도 다 다르다. 내부 복도, 병실과 복도 사이 공간인 전실(前室), 병실, 병실 안 화장실 순으로 기압이 낮다. 공기를 밖에서 안으로 흐르게 해 바이러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공간별로 기압 차를 약 3Pa(파스칼)씩 유지한다.
환자와 마주할 때는 맨살을 노출해선 안 된다. 의료진은 온몸을 둘러싸는(레벨D) 방호장비를 착용한다. 입는 과정도 까다롭다. 우선 보호복의 훼손을 막기 위해 장신구를 제거하고, 방호장비에 구멍이 뚫렸는지 확인한다. 손을 소독한 뒤 장갑을 끼고 전신 보호복을 입는다. 여기에 겉장갑과 덧신, N95 마스크, 얼굴 보호막, 앞치마까지 착용해야 음압병실로 들어갈 수 있다. 음압병실 간호사는 “방호복을 입고 벗을 때도 정해진 순서에 따라야 한다. 한 번 입을 때 10분이 넘게 걸린다”고 말했다.
명지병원은 3개 층에 걸쳐 격리병동을 운영하고 있다. 음압병실까지 들어가려면 층마다 총 5개 문을 거쳐야 한다. 탈의실→전실→음압복도→전실→음압병실 순이다. 전실은 혹시나 모를 공기 중 전파를 막고, 음압을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공간이다.
각각의 문들은 절대 동시에 열리지 않는다. 먼저 열린 문이 닫혀야만 약 10초 뒤 다음 문이 열리는 식이다. 자칫 기압 차가 사라져 공기가 순환하면 바이러스가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손을 가까이만 대도 문이 열리는 감지센서가 설치돼 있다.
● 창문은 밀폐, 모서리는 둥글게
실제 치료가 이뤄지는 음압병실은 관리가 가장 까다롭다. 환자가 배출한 병원체에 의료진이 노출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병원체를 없애려면 환기가 가장 중요하다. 환자의 머리 위로 환기통로가 설치돼 있다. 환자가 말할 때 나오는 비말이 의료진으로 향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다. 송경석 명지병원 시설관리팀장은 “예전에는 환기시설이 천장에만 있었지만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환자와 의료진 간 감염이 문제가 되면서 개선됐다”고 말했다.
병실 구조와 설계도 일반병실과 다르다. 완치될 때까지 병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환자를 고려했다. 천장 높이는 2.4m, 병상 이동을 위해 출입구 폭은 1.2m 이상으로 설계됐다. 공기가 새어 나가서도 안 된다. 벽 이음매, 창문 등은 모두 밀폐 처리된다. 벽의 모서리는 접히는 곳이 없도록 둥글게 만들었다. 먼지가 끼지 않고 청소하기 쉬운 구조다. 특히 호흡기 감염병 환자들에게는 병실의 멸균 상태가 중요하다. 바닥 오염을 막기 위해 병실 내 각종 집기를 벽걸이 형태로 만든 것도 같은 이유다. 화장실 세면대도 비접촉식 손잡이를 설치해 바이러스가 남지 않도록 했다.
음압병실에서 나오는 과정도 까다롭다. 들어오는 동선에 있는 공간들이 오염되지 않도록 다른 방으로 나와야 한다. 격리병동에서 나온 물건은 폐기한다.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사용한 수건이나 환복은 재사용하지 않고 폐기한다. 의료진이 한 번 입은 방호복도 마찬가지. 폐기할 때도 밀폐용기와 비닐봉투로 이중 포장한 뒤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 환자가 가지고 들어간 휴대전화는 예외다. 소독한 뒤 가지고 나올 수 있다. 환자가 입원할 때 입은 옷도 폐기 대상이지만 환자가 원하면 따로 세탁한 뒤 돌려준다. 이곳에서 격리 치료를 받은 3번 환자는 새 옷을 입고 나갔다.
●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 검토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전국의 국가 지정 음압병실은 161개, 병상은 198개(올 1월 기준)다. 메르스 사태 당시 사용 가능한 음압병실이 79개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어느 정도 개선됐다. 하지만 병상이 서울 43개, 경기 28개, 인천 16개 등 수도권에만 87개(43.9%)가 몰려 있다. 지방의 감염병 대응 환경이 그만큼 열악한 셈이다.
정부는 향후 지역별 거점병원을 활용해 음압병상을 900개 이상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기적으로 발병하는 감염병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문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것. 현재 지정된 격리병동 중에는 건물이 낙후돼 전용 엘리베이터 설치 같은 시설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적지 않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기존 병원에 음압병실만 늘리는 것으로는 신종 감염병 위협에 충분히 대응하기 힘들다”며 “권역별로 감염병 전문병원을 만들어 음압시설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고양=송혜미 기자 1am@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