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김환기 그림 도난 사건…갤러리는 ‘장물’ 몰랐나?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어제(13일) 대학교수 A 씨가 가지고 있던 고 김환기 화백의 작품 '산울림'(10-V-73 #314)을 훔쳐 팔아 수십억 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김 모 씨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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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김 씨는 A 교수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며 A 교수의 그림 매매를 몇 차례 도운 일이 있습니다. 김 씨는 A 교수가 2016년과 2017년 '산울림'을 판매하려고 잠재 매수자에게 실물 그림을 보여 주는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A 교수의 운전기사이자 수행비서였던 황 모 씨와 알게 됐고, 2018년 11월 A 교수가 지병으로 입원한 틈을 타 황 씨와 공모해 그림을 훔쳤습니다.
김 씨가 황 씨에게 용돈을 챙겨주겠다며 그림을 빼돌려달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황 씨가 2018년 11월 말쯤 A 교수 집에서 직접 산울림을 훔쳐냈다는 겁니다.
그해 12월 A 교수는 지병으로 숨졌고, 김 씨는 황 씨가 보관하고 있던 그림을 넘겨받아 이듬해 5월 강남 한 갤러리에 39억 5,000만 원을 받고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도난당한 그림 구매한 갤러리는 장물인지 정말 몰랐을까?
그런데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다 끝난 게 아닙니다. 김 씨에게 그림을 샀던 강남 한 갤러리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오늘(14일) '산울림'을 훔친 김 모 씨에게서 39억 5,000만 원에 이 그림을 사들인 강남 한 갤러리의 업무상 장물취득 혐의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갤러리가 작품이 도난당한 것임을 알고도 사들인 것이라며 원소유자인 A 교수의 아들이 갤러리를 고소한 데 따른 겁니다.
A 교수의 아들은 해당 갤러리가 예전에 '산울림'을 사겠다고 했을 때 안 팔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 데다가, 갤러리가 그림을 사들이기 전에 이미 A 교수의 사망 소식이 '부고' 보도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던 만큼 문제가 있는 상황임을 알고도 그림을 사들인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갤러리 측은 "작품 관련해서 우리가 정상적으로 매매계약을 했고, 이미 거래된 상황이고 경찰 측에 협조해서 상세하게 전달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림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고, 그림은 이미 다시 팔아서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얘깁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대상자의 진술 진위 여부 등 그림의 행방을 수사 중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갤러리가 그림을 숨기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 진짜로 그림을 팔았을 가능성 등을 다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림 빼돌리는 데 공모한 수행비서에 대해서도 수사 중
경찰은 아울러 김 씨와 범행을 공모한 A 교수 수행비서 황 모 씨의 공범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황 씨는 김 씨의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김 씨가 그림을 빼돌려주면 용돈을 챙겨주겠다고 해, A 교수가 입원한 틈을 타 그림을 빼돌렸다가 김 씨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하며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기도 했습니다.
황 씨는 당시 산울림을 빼돌릴 때 다른 그림도 함께 들고 나와 총 8점의 그림을 훔쳤는데, 산울림을 제외한 7점은 피해자 측에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씨가 훔쳤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작품 '산울림'은 고 김환기 화백이 뉴욕에서 생활하던 시절인 1973년 5월 10일 완성한 것으로 작품명은 '10-V-73 #314'이고 '산울림'은 부제입니다.